▲ 김인식 감독. | ||
한화 김인식 감독이 최근 잠실 원정경기 때 “미국의 해외파 선수들은 아마 박찬호 정도만 제외하면 3년 이내에 모조리 국내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7시즌 들어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잇단 부진으로 도무지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김 감독은 “한국 선수들 기량 자체가 메이저리그에서 롱런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고 덧붙였다.
2007년은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악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하다. 박찬호(뉴욕 메츠)는 트리플A에서조차 부진한 상황이고 개막전을 메이저리그 1군 엔트리인 25인 로스터에서 맞은 한국인 선수는 서재응 류제국(이상 탬파베이), 김병현(콜로라도) 등 세 명뿐이다. 그나마 김병현은 오른손 엄지손가락 타박상 때문에 얼마 전 15일짜리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지난 94년 한양대에 재학 중인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한국 선수들의 미국행 러시가 시작됐다.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선수는 지금까지 모두 30명. 지난해 하반기에 LA 에인절스와 계약한 광주일고 출신 정영일이 마지막 주자였다.
이들 미국 야구에 도전한 30명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살아 남아있는 선수는 8명이다. 박찬호를 비롯해 서재응과 류제국, 김선우(샌프란시스코), 백차승(시애틀), 김병현, 추신수(클리블랜드), 정영일 등이다. 최희섭은 현재 산하 마이너리그팀 어느 곳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은 채 일본 진출을 추진 중이라 8명에서 제외했다.
박찬호는 트리플A 뉴올리언스에서 뛰고 있는데 같은 타자에게 3연타석 홈런을 허용했다. 서재응은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고 같은 팀 류제국은 겨우겨우 중간 계투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김선우는 얼마 전 트리플A 프레스노 그리즐리스 로스터에 등록됐다.
그나마 시애틀 산하 트리플A 타코마에서 뛰고 있는 선발투수 백차승, 클리블랜드 산하 트리플A 버팔로 바이슨스에 소속된 타자 추신수 등은 시즌 중반 빅리그 승격이 점쳐지고 있다. 정영일은 LA 에인절스 산하 루키 리그에서 뛰고 있는데 빅리그 레벨로 성장하려면 몇 년은 걸릴 전망이다.
▲ 봉중근. 사진제공=LG트윈스 | ||
지난해 WBC 때 대표팀 투수코치를 맡았던 삼성 선동열 감독은 “확실히 미국파 선수들이 국내 선수와 비교하면 경험 면에서 한 수 위인 건 사실이지만 기량이 크게 낫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그 기량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공교롭게도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은 지난해 전반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 감독은 최근 “몇몇 선수들은 지금 한국에 들어와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도 서슴지 않고 있다.
대체로 미국파 선수들이 노쇠화한 것만은 사실이다. 박찬호는 한국 나이로 서른다섯 살, 서재응과 김선우는 서른한 살이다. 김병현은 아직 스물아홉 살이지만 4년 전부터 잦은 부상으로 인해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출신 메이저리거들
반면 메이저리그의 일본인 선수들은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이치로(시애틀)가 최근 40도루 연속 성공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이적료와 몸값 합계 1억 달러(940억 원)로 유명세를 탄 마쓰자카(보스턴)는 승운은 없는 편이지만 개막 후 3경기 가운데 2경기에서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뿌렸다.
지난해 이승엽(요미우리)에게 뭇매를 맞았던 이가와 게이(뉴욕 양키스)도 올 초 미국 이적 후 붙박이 선발을 꿰찼다. 사이토 다카시(LA 다저스)는 부동의 마무리로 활약 중이다. 내야수인 이와무라 아키노리(탬파베이)는 최근까지 3할 타율을 휘두르고 있다.
이들 일본인 선수들은 자국 리그에서 충분한 기간 활약하며 검증을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점에서 한국인 메이저리거들과 구별된다. 대부분 일본 리그에서 좋은 경력을 쌓은 뒤 수백만 달러 이상의 높은 몸값을 받고 미국에 건너가 곧바로 주전으로 뛰고 있다. 반면 현재 미국에 있는 한국 선수들 가운데 국내 프로야구를 경험한 선수는 없다.
▲ (왼쪽부터) 박찬호, 서재응, 류제국 | ||
국내 복귀 ‘실패’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파 선수들은 한국프로야구로 돌아오는 것을 꺼린다. 이들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주문은 “실패를 인정하라”는 얘기처럼 들리기에 당연히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국내프로야구로의 U턴에서 패배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지난해 시즌 중반 LG와 계약한 봉중근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애틀랜타와 신시내티에서 빅리거로서 7승4패1세이브, 방어율 5.17을 기록했던 봉중근은 지난해 LG와 계약금 10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에 계약했다. 미국에 있었다면 기껏해야 마이너리거 최고 연봉(대략 8000만~9000만 원)을 받는데 그쳤을 봉중근이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대박 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봉중근만 좋았을까. LG도 선발 로테이션에 봉중근을 끼워넣음으로써 홈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지난 겨울 동안 절치부심해 훈련에 열중한 봉중근은 미국 시절보다 훨씬 나아진 구위를 선보이고 있다. ‘윈윈’ 시나리오가 그려진 것이다.
이밖에도 두산이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리거 출신인 이승학을 영입해 5월에 첫 선을 보일 전망이다. 롯데는 보스턴-몬트리올-캔자스시티 등에서 마이너리거로 활약했던 송승준과 계약했다.
어떻게 보면 김인식 감독의 발언에는 속뜻이 숨어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돈도 챙기고 팬들에게 즐거움도 선사하라”는 당부의 측면도 포함돼 있는 셈이다. 괜히 베테랑 감독이 아니다. 김인식 감독 말처럼 된다면 한국프로야구는 분명 흥미가 배가될 것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