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은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4월 말까지 홈런 여섯 개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 ||
하라 감독과의 의리
한때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한국계인 것 아니냐는 소문이 한국 기자들 사이에 농담처럼 돌았다. 하라 감독이 이승엽에게 워낙 믿음을 주고 배려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승엽이 넌지시 “혹시 한국계 아니십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명확하게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같은 하라 감독의 믿음에 이승엽은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시범경기 때의 일이다. 왼쪽 무릎 수술을 받은 지 6개월 만에 스프링캠프 일정을 꼬박꼬박 치른 이승엽을 놓고 팀 동료들은 “철인이야, 철인!”이라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승엽은 당시 “몸 컨디션만 놓고 보면 일주일 정도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기후, 하마마쓰 같은 중소도시를 순회하는 장거리 시범경기 스케줄에는 동행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하라 감독이 이승엽을 따로 부르더니 “시범경기라 해도 4번 타자 없는 요미우리는 의미가 없다.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이승엽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시범경기 스케줄을 모두 소화했음은 물론이다.
시즌 전까지 센트럴리그의 약자로 평가받았던 요미우리는 막상 뚜껑을 열자 선발진이 뜻밖의 호투를 보여주면서 5월 초까지 리그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라이벌인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한신 타이거스, 주니치 드래곤즈 등과 박빙의 순위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이승엽이 조금 아프다고 해서 쉴 수는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리운 어머니
4월 말 일본에서 이승엽을 만나고 돌아온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승엽이가 타격할 때 왼쪽 어깨가 아프고,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울림 현상을 느낀다”고 전했다. 매우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경기를 마칠 때마다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승엽은 그러나 홈런 기록만으로 본다면 부상에도 불구하고 예년과 비슷한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이승엽은 4월 말까지 5홈런을 기록했는데 올 시즌에는 4월 말까지 6홈런을 쳤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올해 초 모친상을 당한 뒤 정신적인 후유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승엽을 가까이서 지켜본 지인들의 견해다. 이승엽의 어머니 고 김미자 씨는 2남1녀 가운데 막내인 그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 제아무리 정신없는 시즌을 치르고 있다 해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이승엽을 힘들게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만 31세의 이승엽에겐 아직도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이승엽의 팬들 입장에선 그가 올 시즌만을 위해 무리하기보다는 쉬어야할 때 쉬길 원할 것이다. 이승엽은 일본에선 용병이지만 팀내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아직 일본말이 서툴지만 어떻게든 동료들과 어울리려 노력하며 벤치 분위기를 밝게 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요미우리의 우치다 준조 타격코치는 “다른 선수들도 이승엽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2007년이지만 야구를 향한 그의 자존심과 신념은 여전해 보인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