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과 함께 프로농구 최대 연봉(4억 7000만 원)을 받은 김주성이 ‘개악된 FA규정’으로 인해 소속팀 원주 동부와의 재계약이 유력한 가운데 삼성과의 협상이 깨지자 서장훈의 행보에 프로농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티 팬이 많지만 아직 서장훈은 ‘플레이오프 진출의 보증수표, 우승컵의 예약증서’로 불리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농구의 판도를 바꿀 2007년 5월 서장훈의 FA 이적 스토리를 미리 살펴봤다.
먼저 서장훈과 김주성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공식적으로 둘은 똑같은 자유계약신분이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김주성은 이적이 힘든 반면 서장훈은 ‘탈 삼성’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다.
둘은 지난 3월 한국농구연맹(KBL)이 부랴부랴 개정한 FA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룰 변경 전에도 자유계약신분이 된 KBL 선수는 이적을 할 경우 원 소속구단이 제시한 연봉보다 1원이라도 더 받아야 했다. 이번에 또 선수 한 명이 전체 샐러리캡(팀 연봉상한제)의 40%를 초과하는 연봉을 받을 수 없다는 신규조항이 생겼다. 일명 ‘개인 연봉상한제’다. 2007~2008시즌 샐러리캡이 팀당 17억 원인 까닭에 국내 프로농구선수는 최대 6억 8000만 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동부나 삼성이 원 소속팀과의 우선협상 마지막 날인 5월 15일에 6억 8000만 원을 제시 연봉으로 써내면 김주성과 서장훈은 원천적으로 이적이 불가능하다. 김주성은 이 때문에 FA이적이 사실상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서장훈은 좀 다르다. 2006년 봄 챔피언결정전 최종 4차전 때 벤치에 앉아 팀 우승을 지켜보는 수모를 겪은 서장훈은 비시즌인 여름에 강하게 트레이드 요청을 했고, 실제 모구단과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마지막 순간 틀어지고 말았다. 트레이드가 좌절되자 서장훈과 삼성구단은 2006~2007시즌 종료 후 FA선수가 되면 구단이 4억 원 이상 연봉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즉 삼성은 오는 15일까지 서장훈을 설득해 재계약하지 못해도 KBL에 제시 연봉을 4억 원 이상으로 통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서장훈의 타팀 이적이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만일 삼성이 약속을 어기고 6억 8000만 원을 써낸다면 이는 민사소송으로 발전하는 큰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맥락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서장훈은 이미 삼성으로부터 마음이 떠나 있다. 반면 올시즌을 마친 삼성은 내년부터 용병의 비중이 줄고, 토종 빅맨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는 점에서 서장훈과의 재계약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서기춘 씨는 “가뜩이나 재계약 의사가 없는데 조승연 단장과의 만남이 한층 나쁜 영향을 줬다. 도대체 왜 만나자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서 ‘서장훈의 이미지가 나빠 삼성그룹 고위층이 재계약을 원치 않는데 자신(조승연 단장)이 간신히 설득해서 재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말해 화가 치밀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선수 부모에게 욕과도 같은 자식 험담을 늘어놓으면서 재계약을 하자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기춘 씨에 따르면 삼성은 정해진 연봉 외의 언더머니는 줄 수가 없고, 또 규정이 바뀌어서 다른 팀으로 이적이 쉽지 않으니 삼성과 적당한 선에서 연봉을 결정해 재계약하자고 제시했다. 또 조승연 단장은 이후 KBL의 미국연수에 참가했고, 1차 협상의 데드라인인 15일을 넘긴 16일에 귀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 씨는 삼성이 말과는 달리 사실상 재계약 의사가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
서 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삼성이 해도 해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 장훈이에게 결점이 있지만 팀의 간판선수를 이렇게 무시해도 좋은지 모르겠다. 이건 재계약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확실한 것은 서장훈이 15일 이전에 삼성과 재계약을 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5월 20일까지 어떤 구단이 영입의향서를 내는지 지켜본 후 21일부터 7일간 해당구단과 접촉해 이적 구단을 결정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물론 영입의향서를 내는 구단이 없을 경우 서장훈은 5월말까지 원 소속구단과 재협상을 해야 하고 이마저도 실패할 경우 무적선수가 된다. 자칫하다가는 국내 최고연봉선수가 무적선수가 될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9개 구단의 서장훈 영입에 대한 태도는 어떨까. 규정이 변경돼 직전 시즌 연봉의 최고 300%까지 물어줘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래도 서장훈의 이적을 원하는 팀이 다수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A 구단의 코치는 “서장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성적이 중요한 프로코트에서 아직 서장훈만큼 팀 성적의 보증수표는 없다. 최소 3개 이상의 구단이 영입의향서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장훈과 함께 창단 2년 만에 우승컵을 차지한 바 있는 서울 SK는 서장훈을 삼성에 내준 후 올시즌까지 5년 연속 6강플레이오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른바 농구계에서 ‘서장훈의 저주’로 불리는 사건이다. 반면 삼성은 서장훈이 뛰던 5년간 한 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적이 없고, 2005~2006시즌 우승도 차지했다. 차기 시즌부터는 용병 선발이 드래프트제로 환원됨에 따라 용병들의 수준이 크게 떨어질 것이 예상돼 서장훈 김주성과 같은 확실한 빅맨의 보유가 더 중요하게 됐다.
전 소속팀인 서울 SK, 올시즌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부산 KTF, 플레이오프 진출에 몸이 달아 있는 인천 전자랜드, 차기 시즌 전력이 크게 약화되는 울산 모비스, 심지어 서장훈과 절친한 관계로 알려진 김승현의 대구 오리온스 등이 물밑에서 서장훈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