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2007. 캔자스 산하 더블A 2006 시즌 마무리 1 대 1 미팅.
감독: 한국 가서 군대 간다고?
송승준: 예. 그래서예~ 딱 한 번만 메이저리그에서 공 좀 던지면 안되까예?
감독: 음…. 너 하나 때문에 선수 명단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미안.
1999.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루키 리그, 경기를 끝낸 어느 밤
열아홉 소년, 송승준이 냉장고를 뒤진다. 경기가 끝나면 배가 고픈데 가게들이 밤에는 문을 닫아 먹지 못한 탓이다. 집 생각,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난다. 에이전시, 스티브 김 덕분에 인사를 나눈 선배 박찬호에게 전화를 건다.
송승준: 행님, 승준인데예. 배도 고프고, 집에도 가고 싶고…. 흑.
박찬호: 승준아, 형 말 잘 들어. 이제 넌 혼자야. 유 노우? 너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구~ 내 말 알아들어?
송승준은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운 없는 어른의 길로 들어선다. 시작은 보스턴에서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 등판을 못한 채 2002년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된 것이다.
선발 투수에 9번 타자로 출전한 송승준이 혼자 웃는다. 몸 관리만 잘하면 메이저리그로 올리겠다는 감독의 귀띔 때문이다. 3회 초 송승준이 안타를 치고 1루로 나가자, 다음 타자가 2루 땅볼을 때린다. 병살을 직감한 송승준이 2루로 슬라이딩하며 손을 들어 뻗는다. 순간, 2루로 날아오던 공이 송승준의 오른쪽 손목을 툭~ 꺾어버린다.
2004.5. 재활…토미 존과 조막손 투수 채드 벤츠가 붙잡다
TV에서는 송승준 대신 빅리그로 올라간 투수가 경기를 하고 있다. 깁스를 푼 송승준은 플로리다 확장 스프링캠프로 합류해 재활에 돌입한다. 그곳에서 송승준은 투수들을 지옥에서 건져낸 ‘토미 존 수술(팔꿈치인대접합수술)’의 첫 번째 도전자, 토미 존 팀 코치를 만난다.
송승준: 코치님은 우에 그 힘든 걸 이기고 288승이나 했슴니꺼? 깁스만 풀었지, 손목은 뻑뻑하고 스피드는 형편없고 미치겠심더.
토미 존: 승준, 지지 마라.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러면 페이스를 잃는 거야. 생각은 하되 긍정적으로, 오케이?
송승준에게 힘을 준 사람은 또 있다. 짐 애보트 다음의 메이저리그의 조막손 투수, 채드 벤츠다. 당시 몬트리올 더블A 동료였던 채드 벤츠가 재활에 지쳐있는 송승준을 식당으로 부른다. 재활이 힘들다는 송승준에게 채드 벤츠는 포크를 들어 스테이크를 통째로 찍어 보인다.
채드 벤츠: 야! 너는 니 손으로 스테이크도 잘라 먹잖아? 날 봐. 나도 야구를 한다구!
그후로 송승준은 정말 잘 던진다. 감독도 메이저리그로 올려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몬트리올 재정 문제로 송승준의 빅리그 승격은 또 다시 무산되고 2004년 몬트리올 방출, 2005년 토론토 이적, 3개월 뒤 또 방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내몰린다. 불운은 멈추질 않는다. 트리플A 계약인 줄 알았건만 싱글A 계약이란다. 그러나 송증준은 실력으로 두 달도 안 돼 트리플A로 올라간다. 단장의 면담 요청.
단장: 우리는 한국선수를 마케팅해보고 싶다. 너는 성실하고 예의 바르다. 몸 관리 잘하고 기다려라.
하지만 빅리그로 올라간 선수는 송승준이 아니었다. 송승준은 2006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더블A로 또 다시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2006. 캔자스시티 로열스 더블A 위치타 랭글러스
캔자스 더블A에서도 송승준은 잘 던진다. MVP에 더블A 올스타전에도 출전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군대 문제로 초조해진다. 방어율 5점대. 무너진 송승준은 그즈음 경찰청 창단 소식을 듣고 입대를 결심한다.
팀 동료: 군대? 아, 왜? 영주권 받으면 안가도 되잖아? 가지 마.
송승준: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가거든? 안 가몬 찜찜해서 몬 산다.
입대를 결심한 송승준은 남은 경기들을 즐기면서 던진다. 즐기니까 송승준 특유의 볼끝도 살아난다. 결국 더블A 결승전까지 올라간 송승준.
송승준: 그래. 내한테는 더블A 결승전이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즌기라!!
시즌을 끝낸 송승준이 구단과 마지막 미팅을 한다. “딱 한 번만 메이저리그에서 공 좀 던지게 해주면 안되겠슴미꺼?”
▲ 연합뉴스 | ||
군대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했던 경찰청 구단이 사정이 생겨 선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상무를 알아보는데 롯데에서 연락이 온다. 한시적 해외파 복귀 허용. 송승준은 고민한다.
어머니: 그마이 했으면 댔다. 니 미국 처음 드갈 때 너거 아부지하고 내, 10년 비자 만들어났두만 니가 몬오게 했다아이가. 내사마 우리 아들 공 던지는 꼬라지를 몬 봤다. 우리도 쫌 보고 살자, 어이?
사실 부모님은 송승준의 8년 마이너리그 생활을 모른다. 꿈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송승준은 2007년 3월 27일, 롯데로 입단한다.
2007.5.5. 부산 사직, 삼성 vs 롯데. 첫 번째 선발등판
3만 홈팬 앞에서 송승준이 공을 던진다. ‘데끼리!’ 들려오는 함성. 힘 있는 공이었지만 3회부터 제구력이 흔들린다. 1실점, 4회 초. 성준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들어선다. 5 대 1로 삼성을 이긴 그날 밤,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친구: 니 개안나? 승리투수 못돼서 좀 아깝재?
송승준: 우야겠노? 군대 간다꼬 겨울훈련을 몬한 내 탓이제.
친구: 열심히 해라. 니 공던질 때 너거 부모님 억수로 좋아하시더라.
송승준: 맞나? 미안쿠로! 쪼매만 기다리라. 내가 몸만 더 만들몬~ 공 끝이 마~ 자갈치시장 물고기 맹키로 펄펄 띨끼다! 댔~나?
됐다! 승리의 여신, 니케를 유혹할 송승준의 공이 만들어지고 있다. 눈물 젖은 마이너리그 8년,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송승준을 잊었지만 승리의 여신 니케는 중고 루키 송승준을 사랑할 것이다, 반드시.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