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말 멕시코에서 열린 LPGA 투어 코로나챔피언십 2라운드 9번홀에서 퍼팅하고 있는 민나온. 연합뉴스 | ||
대회 출전 자체를 보장할 수 없는 대기선수로 시작한 미국진출 첫 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비행기로 이동할 거리를 3박4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싸구려 모텔을 이용하며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렸다. 누가 봐도 눈물로 쓴 성공담인데 정작 당사자인 아버지와 딸은 담담했다. “누구나 고생은 하는 것이다. 실력도 그렇고, 아직 부족한 게 많다.” 민영환(48), 민나온 부녀의 무명 돌풍기를 소개한다.
가까운 친구들은 민나온을 ‘민나방’이나 ‘나옹이(야옹이)’라고 부른다. 모두 흔치 않은 이름의 발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별명이 민나온과 관련이 깊다. 고양이는 민나온의 외모와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연약한 듯 곱상한 이미지가 꼭 고양이 같다. 뉴욕의 지인 집에 머물고 있는 민나온과 전화 인터뷰를 했는데 목소리도 사근사근한 게 영락없는 예쁜 고양이 같은 느낌을 전해줬다. 나방은 우리에게 불나방으로 친숙하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불(사실은 빛)을 향해 달려든다. 한국에서도 프로는커녕 아마추어에서도 우승이 없는데 조건부 시드 하나 들고 기약없는 미LPGA 생활에 뛰어들었다. 민나온의 도전 정신이 ‘나방’에 숨어 있다.
민나온은 서울 신암초등학교 6학년때 아버지 민영환 씨를 따라 나갔다가 우연히 골프를 접했다. 전남 장성 출신으로 사업가로 기반을 잡았던 민 씨는 1남1녀 중 첫째인 딸에게 골프를 시키기로 결심하고 남아공으로 골프 유학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민나온은 주니어무대에서 강자로 활약했다. 하지만 2%가 부족했다. 신지애 김송희 등 동갑내기들이 우승컵을 나눠가질 때 가장 잘 한 성적이 준우승이었다. 그네들이 국가대표를 할 때는 상비군에 그쳤고 프로에 진출할 때 아마추어에 머물렀다.
이에 민나온은 ‘불나방 작전’을 택했다. 어차피 목표가 미국이었던 만큼 한국 프로를 건너 뛴 채 2006년 미LPGA Q스쿨에 도전했다. 선전했지만 5일 동안 펼쳐지는 파이널 대회 도중 몸살이 나 공동 18위에 그쳤다. 보통 20명 정도가 풀시드를 받는데 이 해는 15명으로 축소됐다. 간신히 대기 순번 4번을 받는 데 그쳤다.
민나온은 “처음엔 단순히 대회마다 4명만 빠지면 출전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전년도 상금랭킹 91~125위 선수들에게 우선순위가 있다는 미LPGA 규정을 몰랐던 것이죠. 사실상 39번 순위로 월요예선을 거치지 않으면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어요. 많이 힘들었죠”라고 말했다.
2월 하와이 대회는 경비가 없어 아예 불참했고 이후 3개 대회에서 월요예선을 치렀는데 모두 탈락했다. 월요예선은 대회 개막에 앞서 출전권이 없는 선수들을 모아 예선을 치러 2명만 출전권을 주는 까다로운 관문이다. 떨어지면 대회 출전은 고사하고 이동 숙박 등 만만치 않은 경비만 나가게 된다.
LPGA 조건부 시드권자인 민나온은 이렇게 2,3,4월을 잔인하게 보냈다. 민나온 스스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이러던 중 4월말 멕시코에서 열리는 코로나챔피언십에 불참선수가 많다는 정보를 들었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항공료까지 써가며 멕시코로 향했다. 민나온은 월요예선을 통과했고 이 대회에서 무명 돌풍을 일으키며 5위에 입상했다. 민영환 씨는 “솔직히 이번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선전보다 멕시코 때가 더 감동적이었다.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전으로 월요예선 없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민나온은 이후 두 차례 컷오프를 당하기도 했지만 사이베이스클래식 11위, 코닝클래식 26위 등으로 선전했다. 그리고 메이저대회로 월요예선을 거쳐 출전한 맥도널드챔피언십에서 다시 한 번 무명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정말이지 어려운 길을 뚫었지만 민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온이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한국 선수가 같은 도전을 한다고 하면… 글쎄요. 모두 자기 자식은 해낼 거라고 믿으니 얘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생각보다 수백 배는 어렵다고 충고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민영환 씨는 딸 나온이 골프를 시작한 후 1년쯤 지났을 때 남아공 유학을 보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생에서 골프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한국에서는 골프를 하면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골프도 골프지만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냈지요.”
골프기계를 만드는데 급급한 한국의 주니어골프문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리는 대목이다. 미국이나 호주가 아닌 남아공인 까닭은 아는 지인이 남아공밖에 없었기 때문. 그나마도 2년 후 민 씨가 IMF로 사업이 망하면서 딸을 불러들여야 했다. 민나온이 맥도널드챔피언십에서 미국의 골프 채널과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한 것도 이런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민나온은 영어 실력에 대해 “아직 부족하다. 절대 잘 한다고 기사 쓰지 말라”고 주문했다).
민 씨는 전형적인 한국형 ‘골프 대디’. 그러나 국내 주니어무대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부모들과 교류가 없기로 유명하다. 딸에 대한 자랑은 물론이고 골프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조차도 잘 하지 않는다. 민 씨는 “부모들의 입방정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시끄러지는 것 자체가 싫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나면서 딸에게 제대로 못해줘 늘 미안한데 골프에 관해 내가 나서서 설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민 씨는 다른 골프 대디와는 달리 딸의 캐디를 전혀 하지 않는다.
딸도 성격이 비슷하다. 맥도널드챔피언십 인터뷰 때 민나온은 “함께 미국에서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지금… 울 것 같아요. 아버지 얘기는 묻지 마세요”라고 말해 화제를 낳았다. 대회 3라운드에서 단독선두에 오른 직후 “나의 최고 저녁식사는 아버지가 해주는 음식이다. 오늘 밤에도 아버지가 해주시는 저녁을 먹을 것”이라는 뭉클한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또 “운이 좋아 성적을 낸 것이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이제 시작인 만큼 자만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자세를 낮췄다. 플레이스타일에도 차분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160㎝를 겨우 넘는 작은 키지만 260야드를 넘게 날리는 장타자이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컨트롤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부녀의 겸손과는 달리 한국 골프계는 뉴스타 탄생에 한껏 고무돼 있다. 이미 2~3개 회사가 후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한편 민나온 부녀는 7월말 비자 갱신을 위해 잠시 귀국할 예정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