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분이 묘하다. 여기(장충체육관)가 바로 씨름의 메카 아닌가? 더욱이 바로 이 자리(라커룸)가 씨름연맹 사무국 자리다. 이 체육관에서 수도 없이 우승했고 또 씨름계에 환멸을 느낄 때는 바로 여기를 엎어 버리고 싶은 적도 있었다. 이제 K-1 파이터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오니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원조 골리앗은 역시 승부사였다. 단지 세컨으로 K-1 무대에 섰는데 소속 선수가 위기에 처하자 그 큰 키(217cm)로 벌떡 일어서는 등 격투 본능을 보여줬다. 지난 7월 21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K-1 칸 대회에 김영현은 태웅회관 소속의 김준이 치른 경기에 세컨으로 참석했다.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장내 아나운서가 수차례 김영현을 소개하고 중계 카메라가 클로즈업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라커룸에서 만난 김영현은 고향(?)에 온 탓인지 모처럼 편안하게 많은 얘기를 했다. 선수는 아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경험하는 K-1 무대가 장충체육관이라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씨름계를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 씨름이 좋은 시절에는 지금 K-1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씨름 하나를 위해 젊음을 바친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모두 씨름연맹 집행부가 잘못한 탓이다.”
김영현은 현재 K-1 파이터 변신을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다. 태웅회관에서 공선택 관장의 지도하에 맹훈련을 하고 있고 K-1 측과의 계약도 차질 없이 진행돼 도장을 찍는 일만 남았다. 공식 데뷔는 오는 9월로 예정돼 있다.
과거 씨름의 영화가 깃든 현장에서 K-1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김영현의 각오는 어떨까. 김영현은 ‘즐거움’을 강조했다. “씨름할 때는 성적은 좋았지만 즐겁게 하지 못했다. 아직 잘 모르지만 격투기 훈련은 즐겁게 하고 있다.”
김영현은 요즘 매를 많이 맞는다. 평생 맞는 것 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제는 날마다 다양하게 두드려 맞는 훈련을 한다. “정말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웃는다. 운동이 즐겁기 때문이다. 씨름할 때처럼 이것저것 눈치를 보거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열심히 운동만 하면 ‘만사 OK’라는 김영현. 장충체육관에서 만난 김영현을 통해 모래판과 K-1의 링 무대가 묘하게 오버랩됐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