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길 대한체육회 회장(사진)이 최근 체육계에 자정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태권도협회부터 메스를 들이댔다. | ||
<일요신문>이 격투기 전문 인터넷 언론사인 ‘무카스’와 공동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승부조작 의혹’과 관련돼 검찰내사가 진행 중이고 조만간 사법처리로 이어질 예정이다. 김정길 회장과 태권도, 그리고 자정운동의 내막을 취재했다.
김정길 회장은 정치인 출신이다. 부산 출신으로 현 정권의 탄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04년 2월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았고 1년 뒤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하면서 IOC 위원까지 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대한체육회장 이후 정계 복귀로 진로를 잡았고 정치권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대한체육회장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기 위해 자정운동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김 회장의 태권도 자정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4년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체육계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김 회장은 오랫동안 비서관으로 일했던 하봉갑 씨의 건의로 체육행정가로 변신하게 됐다. 동아대 출신으로 태권도를 했던 하 씨는 구천서 회장의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태권도협회장직이야말로 당시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었던 김정길 회장이 대한체육회장으로 나가는 데 최적의 자리라고 판단했다. 대한체육회장은 산하 종목단체의 회장을 거쳐야 한다.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김 회장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선거에서 이종승 당시 충남태권도협회장과 두 차례나 동수를 이루는 등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에 협상을 통해 김정길 회장은 한국 태권도의 수장이 됐고, 이 과정에서 전무이사 자리를 반대편에 넘겨줬다. 당초 김 회장의 밑에서 전무이사를 맡기로 돼 있었던 양진방 이사는 신설된 기획이사에 임명됐다. 하봉갑 씨도 이때 대한태권도협회 이사를 맡았다.
김정길 회장의 ‘사람’이었던 하 이사는 3년여 동안 태권도계를 예의 주시했고 김 회장이 자정운동 카드를 쓰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대한태권도협회의 핵심인사들이 ‘승부조작’에 관련돼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하 이사는 지난 7월 25일 임춘길 전무에게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고 임 전무는 다음날인 26일 자진 사임하고 잠적했다. 전무이사가 자진사퇴한 것은 태권도협회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임춘길 전무 측의 태권도인들이 반발했고 하봉갑 이사와 가까운 모 실업팀 감독이 심판들에게 뇌물을 돌렸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하봉갑 이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태권도 자정운동은 김정길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체육계 자정운동의 시작이다. 결코 시늉만 내고 적당히 마치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 년 묵은 태권도계의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라고 말했다.
하 이사는 이미 승부조작과 관련된 자료를 검찰에 넘겼고, 곧 공식 수사 및 사법처리가 진행될 것이라는 내용도 밝혔다. 또한 “이처럼 큰일을 증거도 없이 하겠는가. 뇌물 수수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만일 승부조작이 사실이 아니라면 당사자들이 왜 사표를 내고 잠적하겠는가. 오히려 거꾸로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정상이 아닌가”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태권도계의 판정비리는 뿌리도 깊고, 역사도 오래됐다. 태권도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올해 들어서도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경기 승패를 좌우하는 경고가 거꾸로 주어지는 등 너무나 황당한 판정시비 사건이 계속 터졌다. 관련자들이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한국체육대학이라는 특정대학 출신을 밀어주기 위한 조직적인 승부조작이라는 의혹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한 학부모가 “내가 직접 돈을 찾아 심판에게 건넸다”는 등의 제보와 양심 선언도 잇달아 터지고 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승부조작과 관련된 다수의 태권도인이 사법처리를 당할 것이고 김정길 회장이 상설기구로 설치한 윤리위원회를 통해 더 많은 수의 태권도인이 태권도계에서 쫓겨날 전망이다. 피해 선수들의 반발과 재경기 등 한국 태권도계 전체가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MBC TV의 시사고발프로그램인
‘한국의 국기’ 태권도가 위기를 딛고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태권도 발 자정운동이라는 핵폭탄이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의 규모로 터질 것인가에 태권도인은 물론이고 체육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