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빨리 하려다가는 오히려 이루지 못한다
이번 시즌 박지성에게는 기다림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 시즌 말,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갑작스런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현재 재활 치료 중이다. 박지성이 재활의 기간을 보내는 동안 맨유에는 새로운 라이벌들이 영입됐다. 퍼거슨 감독이 간절히 원했던 오웬 하그리브스와 나니 그리고 안데르손이 박지성과 함께 포지션 경쟁을 펼치게 될 주인공들이다.
박지성은 영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의 인터뷰에서 주전 경쟁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지성은 오는 10월이면 그라운드에서 훈련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전 경기 투입은 예정대로 내년 1월쯤이 될 것 같다. 현재 맨유가 팀 내외적으로 심각한 부담감과 함께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박지성의 무리한 복귀를 희망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오는 12월 크리스마스를 전후에 많은 경기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진행된다. 박지성의 투입으로 다양한 공격 옵션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퍼거슨 감독의 말처럼 박지성이 내년 초 슈퍼맨처럼 부활해 맨유의 진정한 구세주가 되길 기대해 본다.
노당익장 (老當益壯)
늙을수록 더욱 굳세다
화려한 첫 시즌을 보낸 이영표는 2006년 여름 별안간 이탈리아 AS로마로의 이적이 진행됐고 거의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적 시장 마감을 앞두고 이영표는 토트넘 잔류를 선언했다. 이영표의 잔류 선언에 따라 토트넘도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떠날 것으로 생각했던 선수가 남았고 구단과 구단 사이의 약속도 실행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 이영표를 대신할 아소 에코토라는 포지션 경쟁자까지 영입되면서 이영표의 입지는 나날이 줄어들기만 했다.
그러다 박지성과 더불어 이영표 역시 아쉽게도 시즌 말미 부상으로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수술 후 재활을 진행해 왔다. 2007~
08 프리미어리그 새 시즌이 시작되고 2경기 연속 패배를 당하던 토트넘이 지난 25일 가졌던 더비 카운티와의 3라운드 경기에서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첫 승을 거머쥐게 됐다. 이영표도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그라운드에 선발 출전했던 경기였다. 경기 후 토트넘의 마틴 욜 감독은 이영표의 활약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영표의 가세로 인해 토트넘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이영표의 합류는 부상 선수의 복귀가 아니라 팀에 큰 변화를 준 것이었다. 시즌 개막과 동시에 왼쪽에 허점을 보였던 토트넘이 이영표의 복귀로 완벽한 팀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영표는 이번 여름 토트넘이 거액을 들여 데려온 가레스 베일, 아소 에코토와 함께 또 다시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한다.
뛰어난 서예가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
유럽에서만 벌써 8년째, 설기현은 현실적인 프리미어리거 성공 사례다. 유럽의 하위 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후 잉글랜드 2부 리그를 거쳐 당당히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선수다.
설기현은 지난 2006년 여름, 월드컵이 끝남과 동시에 레딩FC로 이적했고 시즌 초반 레딩 돌풍의 주역이었다. 설기현의 활약으로 레딩은 홈에서 미들즈브러에 역전하며 첫 승을 따냈고 이후 강팀들과의 대결에서도 설기현은 상대편 수비수들을 교체시키는 일종의 킬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상승세도 잠시, 설기현도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팀의 간판이었던 글렌 리틀이 설기현의 자리를 다시 차지했고 설기현은 주전 자리에서 밀려남과 동시에 깊은 슬럼프에 빠지며 감독과의 불화설, 이적설 등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 한국 기업 LG전자와 후원 계약을 체결한 풀럼과 이동국의 소속팀인 미들즈브러에서 설기현에 대한 관심과 함께 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보냈다. 설기현의 귀도 솔깃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설기현은 레딩 잔류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설기현은 “레딩에 잔류하기로 맘 먹은 이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로 잔류 결심의 답변을 대신했다.
사실 설기현이 레딩을 떠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본인이 그토록 바라던 주전 자리도 충분히 준비가 된 상태다. 포지션 경쟁자인 글렌 리틀이 현재 부상에서 언제 복귀할지 모르고 팀에서도 설기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불입호혈 부득호자 (不入虎穴 不得虎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없다
프리미어리그 막둥이, 이동국. 지난 1월, K리그에서 곧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입성한 한 마디로 대단한 선수다. 유럽 리그에서 검증되지 않은 아시아 선수를 단번에 영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한국 축구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직까지 이동국의 활약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지난 시즌 데뷔전이었던 레딩전에서 골대를 맞추며 홈팬들의 기대를 잔뜩 모았지만 그 뒤로 이동국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팀 내 경쟁자였던 마크 비두카와 야쿠부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이동국에게 새로운 기회가 오는 듯했다. 하지만 빠져 나간 만큼 새로운 얼굴들이 보로에 들어왔다. 전 토트넘 소속의 호삼 미도, 아스널 소속이었던 제레미 알리아디에르, 터키에서 온 툰카이 산리까지 이번 시즌 그의 경쟁 상대는 더욱 많아지고 말았다.
새 시즌이 시작된 후 이동국은 그 동안 세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으로 팀의 한 구성원으로 몫을 다했다. 하지만 후반 긴 시간을 뛰지 못하는 이동국에게 큰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영국 축구계의 평가도 그리 좋지 않다.
다행히 이동국은 “더 이상 적응이 문제라는 말은 핑계일 뿐”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이동국은 구단 전체가 쉬는 날에도 혼자 훈련장을 찾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다.
현재 이동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한 자신감이다. 언제까지 그저 지켜보고 배우는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이동국에게 지금 당장 그라운드에서 기회가 생긴다면 이전처럼 자신감 넘치는 슈팅을 보고 싶을 뿐이다.
런던=조한복 축구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