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전국체전 개막식 모습 | ||
엄밀히 말하면 시군청팀(정확하게는 시도군청팀)도 실업팀이다. 학생이 아닌 직장인을 선수로 삼아 팀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육계에서는 시군청팀을 ‘무늬만 실업팀’이라고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 국내 유명 대기업이 운영하는 ‘진짜 실업팀’에 비해 예산이 턱없이 적고 세계적인 선수를 키우기보다는 전국체전에서 성적을 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 때문이다.
똑같은 실업팀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실업팀과 시군청팀으로 나누는 구분법은 편의주의적인 발상이거나 언론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체육회 자체가 (성인)일반팀을 실업, 군, 시군청팀으로 나누고 있다. 2006년 대한체육회 통계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산하 55개 경기단체에는 2197개의 실업팀과 2033개의 시군청팀이 있다.
시군청팀은 그 존립 근거가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에 지자체 간의 대결인 도민체전과 전국체전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 두 체전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올리는 것이 시군청팀들에게는 지상과제다. 그래야 팀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또 해체 등의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군청팀들 간의 선수 스카우트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천만 원에서 일부 스타플레이어의 경우 억대까지 치솟는 스카우트비가 거래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수를 빼가고 이에 반발하는 일이 태반이다.
장미란의 경우 고향팀인 원주시청의 의사에 반해 라이벌 시도(경기도)로 이적하자 강원도 측이 대한체육회의 괴상한 선수규정을 걸고넘어지면서 잘 다니고 있던 고려대(2005학번)에서 자퇴하게 만들었다. 2005년 개정된 선수등록 규정(9, 10조)에 따라 ‘선수는 학교와 실업팀에 이중등록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어긴 것이 문제가 됐다. 자신들의 팀(원주시청)에 있을 때는 조용히 있다가 팀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체육회에 이의를 신청해 선수에게 보복을 했다.
사실 이 규정의 2005년 개정 자체도 지역 기반을 두지 않은 진짜 실업팀 소속의 선수가 전국체전 때 대학교에 소속돼 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악’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실력은 있지만 생계를 위해 고교졸업 후 일찌감치 실업팀으로 진로를 택한 많은 선수들이 운동과 함께 학업을 병행하는 좋은 제도가 사라지고 말았다. 예컨대 ‘국민마라토너’ 이봉주는 고교졸업 후 서울시청에 입단하면서 부수조건으로 서울시립대 대학생 자격까지 얻어 ‘대졸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 역도스타 장미란. | ||
출전만 하면 8위 이내에 입상해 포인트를 딸 수 있는 상황에서 필드선수가 트랙선수로 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높이뛰기에서 세계적인 선수로 활약했던 이진택은 대구은행 시절 1600m 남자 계주에 출전하기도 했다. 일부에서 체전 망국론, 시군청팀 망국론이 나오는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
이런 시군청팀은 평소, 그것도 연초에는 훈련 분위기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 힘든 운동을 싫어하는 젊은 선수들이 실력을 요구하는 진짜 실업팀에서 편안한 시군청팀으로 옮기는 현상도 발생한다. 스카우트비로 목돈까지 챙길 수 있으니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육상단의 조덕호 사무국장은 “어렵게 유망주를 스카우트해와 몇 년 동안 고생해서 겨우겨우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수로 만들어 놓으면 조금 후 약속이라도 한 듯 대개 시군청팀으로 가겠다고 한다. 시군청팀은 세계적인 선수가 아니라 국내 정상급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육상에서 좋은 선수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한 지방체육회의 고위 관계자는 “시군청팀을 우습게 아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시군청팀이 없어지면 대한민국 체육계는 바로 쓰러진다. 지방자치단체가 돈줄을 쥐고 있는 현실에서 시군청팀이 체전 등에 목을 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시군청팀의 순기능도 있다. 홍보 효과가 미미한 비인기종목의 경우 일반 기업체들은 실업팀 운영을 꺼려한다. 시군청팀은 이런 경우에도 체전종목이라는 이유만으로 팀을 만들어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먹고 살 기반을 마련해준다.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장미란이 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전국체전에 참가해 3관왕의 쾌거를 이룬 배경에는 고양시청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군청팀은 한국 체육계의 ‘필요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운영시스템 하에서는 ‘필요’보다는 ‘악’의 무게가 더 크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