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결정타가 2005년 한국에서 있었던 ‘말뚝 사건’이었다. X캔버스여자오픈대회에서 실수로 뽑은 말뚝 때문에 이런저런 구설수에 올랐고 그 일로 언론에 회자되면서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다. 그 일 이후로 미국에서의 생활이 엉망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그 얘기를 물어보는 바람에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대인기피증까지 생길 정도였고 내가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 같았다.”
안시현은 그때를 골프 인생의 ‘격동의 시간들’이었다고 표현한다. “잘나갈 때는 몰랐던 경험이었다. 미치도록 연습도 해보고 목이 쉬도록 운 적도 있었다. 그래도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꿈이 깨지는 듯했다고 한다. 너무 일찍 미국에 진출했고 준비 없이 LPGA에 도전한 것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남들 고생해서 들어오는 자리를 너무 쉽게 차지해서 이런 고생을 하나 싶었다. 지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많이 어렸던 것 같다. 겸손하지 못했고 우쭐한 기분으로 뭔가를 다 이뤘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간들이 당시엔 고통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깨달음으로, 경험으로 다가온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 정말 맞는 말이더라.”
아직 스폰서가 없는 안시현은 ‘스텝 바이 스텝’의 심정이라고 한다. 좋은 성적을 냈을 때 떳떳한 모습으로 스폰서 계약을 맺고 싶다는 희망 사항도 숨기지 않는다.
“어느새 후배들이 많아졌다. 한때 안시현 하면 ‘한미모’했는데 예쁜 후배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난 아직 죽지 않았다(웃음).”
얼마 전만 해도 안시현한테서 이런 인간적인 면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안시현은 많이 성숙해 있었다. 후배들의 결혼 소식에 잔뜩 부러움을 나타낸 안시현은 “아무리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둘러보면 노랑 머리랑 부모님들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