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회사 측으로부터 해임 결정을 통보 받은 유남규 농심삼다수 감독. | ||
기본은 농심탁구단의 이재화 총감독과 유남규 감독의 갈등이지만 여기에는 뿌리 깊은 탁구계의 내분과 열악한 실업탁구단의 현실 등 탁구계 모순이 깊숙이 연관돼 있다. 16년간 인연을 맺어온 사제지간의 갈등, 선수들의 반발, 그리고 짠돌이 구단의 총감독 편들기, 여기에 대한탁구협회의 졸속 대응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번 사태를 살펴봤다.
지난 10월 19일 충북 단양체육문화센터. 국가대표상비군 1차선발전이 한창인 가운데 이재화 총감독이 유남규 감독을 따로 불렀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유 감독과 이 총감독의 말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녹음이 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최소한 ‘이 총감독이 유 감독에 대해 회사 측의 해임 결정을 통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 감독이 이 만남 후 바로 숙소로 이동해 서울로 올라갈 짐을 쌌고 이 사이 경기장에 유 감독이 해임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확실한 해임 통보였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 총감독은 언론을 통해 “해임 통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그동안 유 감독이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는 표현을 자주 썼으며 회사는 본인의 앞길을 열어주는 차원에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유 감독은 “선수들의 연봉협상 등과 관련해 회사와 마찰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회사가 정 어려우면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라고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등 해임될 이유가 전혀 없다. 또 설령 해임 결정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국가대표선발전 도중 경기장에서 불쑥 해임 결정을 통보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도 없고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회사는 지난 22일 3자대면까지 했으나 의사 전달에 문제가 있었다면 ‘없던 일’로 덮어두려 하고 있다. 농심의 손근학 차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큰 문제가 아닌데 작은 오해로 인해 일이 너무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감독의 해임설’은 대회 도중 천영석 대한탁구협회장에게까지 전달됐고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을 통해 ‘국가대표 감독 해임설’까지 등장했다. 천 회장은 현장에 있던 기자에게 해임설을 발설했다가 유 감독의 항의를 받는 등 이것이 파문을 일으키자 입장을 바꿔 “그런 일이 없다”며 사태를 수습하기도 했다.
농심 측은 연봉협상 등 탁구단 운영에서 회사 측과 가까웠던 이재화 총감독을 두둔하며 이번 사태를 ‘해프닝’으로 규정했다. 유 감독도 10월말 국제오픈대회 출전이 있고 12월 결혼을 앞두고 있어 분을 삭이려 했다. 하지만 2차 빅뱅은 10월 29일 발생했다. 베이징올림픽국가대표 발탁이 유력한 이정우 등 주요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이 총감독과 회사 측이 출국 하루 전에 ‘나갈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에 유 감독과 선수들은 크게 반발했고 11월 1일 숙소에서 선수단 미팅을 가졌지만 고성이 오가는 진통을 겪었다. 이후 선수들의 부모가 합류해 선수들과 함께 농심을 방문, 이재화 총감독의 퇴임을 요구하는 집단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유남규 감독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해도 해도 너무 심하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87년 동아증권(당시 동아생명)에 입단했고 이재화 감독님은 92년 말 코치로 부임했다. 16년이나 되는 인연이다. 누가 뭐래도 제자로서, 후배로서 그분을 열심히 모셨다. IMF 경제위기로 동아증권이 해체됐을 때 마사회에서 선수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지만 이재화 감독을 배제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포기했다. 또 2005년 회사(농심)가 1인 감독 체제를 원해 이 총감독님을 해고하려고 했을 때도 그럴 수 없다며 강하게 버텨 선배를 지켰다. 최소한 두 번이나 그 분을 위해 배려했는데 자신이 살기 위해 나를 모함하고, 선수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결혼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말이다.”
▲ 구단을 대변하면서 유 감독·선수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재화 총감독. | ||
<일요신문>은 계속해서 이재화 총감독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개인 전화는 받지 않았고, 회사 측에 연락을 요청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농심의 이정우 선수는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발전 도중 벤치를 지키던 감독 선생님이 해임됐다는 얘기가 들리고, 올림픽 시드배정에 더 없이 중요한 국제대회도 회사가 보내주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다”라고 호소했다. 이정우는 “부모님이 자비를 들여 유럽오픈 대회에 출전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물거품이 됐다. 두 감독 선생님들 사이의 갈등이 문제의 원인이라면 회사에서 한 분을 택했으면 좋겠다. 선수들은 직접 기술을 가르쳐주는 유남규 감독을 따르겠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농심의 손근학 차장은 “이정우 선수는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고 조언래 등 나머지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이 사실상 힘들어 국제대회 파견을 취소했다”라고 설명했다.
탁구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제로 농심 선수들은 타 실업팀의 동년 차에 비해 연봉이 최소 수백만 원씩 적고, 우승포상금도 절반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농심의 주요선수들은 회사의 지원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내년에 대거 군입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사태는 회사의 박한 지원과 이에 대한 선수들의 뿌리 깊은 불만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재화 총감독과 유남규 감독이 각각 회사와 선수들을 대변하면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파벌 싸움이 심각한 대한탁구협회까지 거들며 탁구계 치부를 드러내고 말았다. 한 탁구인들은 “농심은 역사가 짧지만 신흥 강호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성적을 내왔다. 진정한 명문 실업 탁구단으로 발전하는가 아니면 적당히 넘어가려다 결국 최악의 사태를 맞는가의 문제는 결국 농심의 손에 달려 있다”라고 평가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