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서울 SK와의 경기에서 전창진 감독이 가드 표명일에게 전술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요즘 프로농구계에서는 ‘전창진 리더십’이 화제다. 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이후 특별한 전력강화 요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올시즌 초반 1위를 독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표명일 강대협 등 타 팀에서는 식스맨에 불과했던 선수들이 동부에서 맹활약하자 ‘원주(동부의 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동부 돌풍의 핵, 전창진 감독을 집중 해부했다.
# 뉴 덩어리파
전창진 감독의 마당발이 뻗히고 있는 곳은 서장훈뿐만이 아니다. 최근 유명 농구인은 전창진 감독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이전까지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오랜 야인 생활 끝에 한국 농구판에서 지도자로 발탁되기 위해서는 전창진의 입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얼마 전 장일 전 대성고 감독의 KCC 스카우트 영입도 전 감독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전 감독과 친형제와도 같은 최형길 KCC 단장(전 동부단장)에게 인사를 부탁해 성사된 일이다(이후 KCC는 초반 부진을 털고 순위가 치솟고 있다). 이처럼 전 감독의 물밑 영향력은 대단하다. 농구 원로에서부터 각 구단의 관계자, 그리고 언론과 선수들에게까지 지인들이 포진해 있다.
한 농구인은 “어떤 이유로든 전창진 감독과 등을 지면 좋은 일이 없다. 정보에서 밀리고, 또 여러 가지 부분에서 태클이 들어온다. 쟁쟁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선배들도 전 감독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최근 이 같은 전창진 감독의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한국농구계에서 영향력이 남아 있는 ‘덩어리파’를 연상케 한다. ‘덩어리’는 이인표 KBL 재정위원장(64·전 삼성이사)을 가리킨다.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농구행정가로 한국농구계의 한 획을 그은 이 위원장은 넉넉한 덩치와 인품으로 ‘본의 아니게’ 뜻을 함께 하는 후배들이 많았다. 예전 이 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였듯이 최근 전창진 감독을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되자 ‘뉴 덩어리파’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다. 전 감독이 185㎝에 100㎏이 넘는 거구이고, 또 원조 덩어리파의 핵심 멤버였다는 점에서 제법 그럴듯한 표현이다.
강동희 동부 코치는 전 감독에 대해 주저없이 “현역 최고의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성적을 봐도 그렇다. 동부 감독을 여섯 시즌째 맡고 있는데 지난 시즌(07~08)을 제외하면 4시즌 동안 모두 3위 이내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중 두 번이 우승이고 한 번은 통합우승이었다. 이는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물론이고 동양의 전성기를 이끈 김진 감독(현 SK)을 능가하는 성적이다. 강 코치는 “창진이 형한테 정말 많이 배우려고 한다. 누구처럼 스타 출신이라고 빨리 감독이 될 생각이 없다. 그저 감독님 밑에서 오랫동안 코치로 일하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동부는 ‘연봉 킹’ 김주성(6억 8000만 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의 연봉은 타구단의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친다. ‘애환’이 많은 양경민이 정상이 아닌 가운데 표명일, 강대협, 손규완 등이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다른 팀에서는 평범했던 선수들이 원주에만 가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학시절 정상급 선수에서 부상으로 인한 은퇴 그리고 ‘세계적인 주무’라는 평을 들었던 농구단 주무 시절 등을 차례로 거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전창진 감독의 농구인생이 녹아 있다. 스타플레이어부터 벤치 워머, 그리고 구단 프런트들의 심리까지 도통하니 농구판에서 사람을 대하는 재주는 최고라는 평을 듣기에 손색이 없다.
전 감독은 농구단뿐 아니라 원주에 수두룩한 후원자를 갖고 있다. 김기열 원주 시장과 기업가, 검·경 관계자 등은 물론이고 원주에서 조직을 관리하는 ‘큰 형님’들까지 동부의 후원자로 만들어버렸다.
# 술 못하는 마당발
술 한 잔도 못하는 마당발
올시즌 개막전 전문가들의 평가에서 동부는 잘해야 6위 정도였다. 6강 탈락으로 점쳐진 경우도 많았다.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동부는 고공행진을 하며 2003, 2005년에 이어 V3를 겨냥하고 있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전창진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줘서 그렇다”며 말을 아꼈다. 또 의도했든 아니었든 간에 최근 한국 농구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가까운 선후배들을 챙기는 수준이다. 농구를 좋아하고,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을 뿐”이라고 답했다. 특히 언론에 아직 ‘어린’ 자신이 대단한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육중한 체격과 푸근한 인상의 전 감독은 몸은 곰 체형이지만 머리는 여우를 능가한다. ‘코트의 여우’로 불리는 최희암 전자랜드 감독이나 까칠하기로 소문난 허재 KCC 감독, 최부영 경희대 감독, 강을준 명지대 감독 등 “전창진은 인정한다”고 말하는 선후배 지도자가 즐비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전창진 감독이 소주 한 잔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 ‘두주불사’가 인간관계의 척도로 남용되는 한국 현실에서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는 전 감독의 성공신화는 특이하기만 하다.
83년생으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동갑인 전창진 감독은 조던이 프로에 뛰어들 때 일찌감치 운동을 접었다. 또 조던이 세계를 호령할 때 전 감독은 삼성농구단의 주무로 일했고, 조던이 은퇴하던 2003년 만 40세도 안 돼 프로 첫 시즌에서 감독으로 우승을 달성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