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해하는 그 코치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축구계의 한 관계자는 “대학 감독이 얼마나 메리트가 있는 자리인데 쉽게 될 줄 알았느냐”며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태극마크 경력이 있는 유명 선수들이 은퇴 이후 대학 감독 정도는 우습게 보고 덤비는 경향이 있는데 대학 사령탑이 ‘돈이 되는 자리’인 터라 프로 감독되기만큼 어렵다”며 ‘요지경 대학축구판’ 비화를 전했다.
물론 이 관계자는 비화를 밝히기에 앞서 “모든 대학 감독들이 비리에 연루된 건 아니다. ‘일부’ 지도자들이 검은 돈을 만지며 물을 흐린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 “3000만 원 내시죠”
‘비리 감독’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입시철이다. 목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돈을 뽑아낼 수 있는 대상은 유망주에 딸려오는 선수들이다. 보통 대학들은 유망주를 영입할 때 실력이 달리는 그의 동기를 받는 경우가 많다. 고교 감독은 진학률을 높이고 돈맛이 든 대학 감독은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윈윈게임’이다.
실력으로는 대학 축구부에 들어올 수 없는 선수들을 받는 만큼 비리 감독들은 선수의 부모에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한다. 액수는 그때그때 다른데 몇 년 전 비리혐의가 밝혀져 구속된 한 명문 사학 감독은 3000만 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리 감독들의 돈 요구가 부당할 법도 하지만 학부모들은 군소리를 안 한다. 대학졸업장을 돈으로 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비리 감독들은 돈을 ‘바치고’ 들어온 선수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체육특기자(장학생)가 아니라서 돈을 내고 학교를 다니는 이들의 신분을 이용, 입학한 지 1년 정도 흐른 시점에서 특기자로 만들어 돈을 안내고 학교에 다니게 해 줄 수 있다고 꼬인다. 선수의 학부모가 솔깃해 돈을 내면 학교에는 학생이 입학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보고서를 제출해 신분을 ‘세탁’해 주고 돈값을 한다.
비리 감독들에게는 생존 법칙이 있다. 무리하게 욕심을 내서 혼자만 배를 불리면 안 된다는 것. 최근 구속된 한 감독이나 몇 년 전 구속된 명문사학의 한 감독은 이 같은 법칙을 어겼다가 실형을 받았다.
# 혼자 먹으면 체한다?
최근 구속된 감독은 전임 감독에게 돈을 챙겨주지 않았는데 이를 괘씸하게 여긴 전임 감독이 후배 감독의 비리 사실을 제보했다. 후배가 ‘등쳐먹은’ 선수가 바로 자신의 친동생이 축구부 감독으로 있는 고등학교를 나온 만큼 전임 감독의 제보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수준이라 비리 감독은 변명 한 번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위 두 감독이 혼자만 먹다 체한 경우라면 숱한 비리 의혹에도 장수를 하다 물러난 한 감독은 ‘보험’을 들어놓은 덕분에 살았다. 이 감독은 돈을 받으면 체육부장과 축구부 담당교수 등에게도 섭섭지 않은 액수의 돈을 건넸다. 공범을 여러 명 만들어 놓아 일이 터졌을 경우 이중 삼중의 보호막이 가동되도록 만들었다.
# 대학팀 뒤엔 프로팀?
공범들의 비호를 받으며 막대한 돈을 만진 이 감독의 최고 작품은 몇 년 전 나왔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명문 두 사학은 고교 특급선수를 놓고 영입 경쟁을 벌였다. 불법이긴 하지만 두 학교는 학생의 부모에게 5000만 원을 제시했다. 이 중 한 학교는 특급선수를 지도한 고등학교 감독이 동문이란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긋했다.
위기를 느낀 경쟁 학교는 특급선수를 탐냈던 한 프로팀의 막후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뒤집기 승부를 연출했다. 프로팀은 혀가 바짝 말라 있던 이 학교에 5000만 원 지원을 약속하며 “대신 선수가 졸업할 때까지 못 기다린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우리에게 그 선수를 보내라”고 제안했다.
외교력(?)이 탁월했던 비리 감독은 실탄을 장착한 뒤 특급선수의 고교 감독을 구워삶는 데 성공해 마침내 뜻을 이뤘다. 이후 약속대로 일정 시간이 흐른 뒤 프로팀에 특급 선수를 넘겼다. 비리 감독의 탁월한 일처리에 감명을 받은 프로팀은 학교에 추가 지원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비리 감독의 학교 내 입지는 이 일로 더욱 굳건해 졌다.
# 한때 “계약금은 내 밥”
신입생을 받으면서 배를 불린 비리 감독들은 프로팀에 입단하는 졸업생들에게도 손을 내민다. 지난 2005년부터 드래프트가 시작되면서 없어졌지만 한때 계약금이 있었을 때는 대놓고 선수의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말했다. 구속되면서 선수들 사이에 쫙 퍼졌던 이 감독의 ‘유명한 말’을 전하면 다음과 같다.
“계약금이란 게 원래 선수가 받는 돈이 아닙니다. 학교가 받는 돈이죠. 그런데 프로팀에서 바로 학교에 주기 뭐하니까 잠시 선수의 통장을 빌리는 겁니다. 후배들을 위해서 선배가 마지막으로 뭔가 해줘야죠. 자 주시죠.”
학교 발전 기금 명목으로 선수의 계약금(3억 원)을 꿀꺽한 이 비리 감독은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학교 체육부장과 후배들을 위한다던 돈을 접수했다. 얼마 후 체육부장은 승용차를 외제차(BMW)로 바꾸고 호화 골프를 즐기는 장면을 주위에 들켰다. 계약금이 없어진 지금에도 선수가 받는 연봉 중 일부라도 달라는 흡혈귀 같은 비리 감독이 있다.
# 파벌·암투의 장
자리가 자리인 만큼 대학 축구부 감독이 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 정치판 못지않게 파벌 간의 알력이 심한 만큼 확실한 곳에 몸을 맡겨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몇 년 전 한 유명 사학 감독이 비리로 구속된 뒤 후임자를 뽑았을 때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와 유명한 방송해설위원이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덜한 지도자였다. 확실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쟁쟁한 후보자들을 제친 것이다.
이번에 고배를 마신 국가대표 출신 한 코치도 파벌 싸움에 밀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경쟁자가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깔봤지만 그의 배경을 간과하다 큰코다칠 판이다. 파벌이 있고 감독 자리를 두고 암투가 일어난다는 것은 대학 축구계에 비리 감독이 꼬일 만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걸 의미한다.
전광열 스포츠칸 축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