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호 | ||
그라운드에서 상대 선수에게 침을 뱉고 방송 카메라를 향해 욕설을 퍼붓는 선수의 모습과 약속을 어긴 채 K리그 승격을 거부한 내셔널리그 팀 관계자의 당당함과 하나마나한 답변을 떡하니 내놓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뻔뻔함도 2007년을 다사다난하게 만든 사고 중 하나였다.
<일요신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7년의 출구에 선 축구인들을 만났다. 올해 가장 좋았던 순간과 아쉬웠던 순간을 물어봤다.
정경호(전북)는 새신랑답게 ‘미혼’에서 ‘기혼’으로 변화를 이룬 결혼식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정경호는 울산대 1학년 시절 감독의 주선으로 만나 9년 동안 사랑을 키웠던 양현주 씨와 지난 12월 8일 서울 역삼동 임페리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솜사탕 같은 신혼재미에 푹 빠져있는 정경호는 아쉬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우라와랑 붙었을 때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했는데 그때 정말 화가 났다. 한 마디로 어이가 없는 판정이었기 때문이다.”
정경호는 지난 9월2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2차전에서 전반 22분 경고누적으로 퇴장했다. 우라와 진영 왼쪽을 돌파하다 태클에 걸려 넘어졌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감디 주심은 정경호가 페널티킥을 얻어내기 위해 시뮬레이션 액션을 했다며 옐로카드를 꺼냈다. 이미 한 차례 경고를 받았던 정경호는 경고 누적으로 그라운드를 떠났고 이후 전북은 힘든 경기를 하다가 졌다.
당시 정경호는 “경기하다 보면 여러 상황이 있고 선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발전한다”고 위로한 절친한 친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조언 덕분에 분한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김진규(서울)와 이관우(수원)는 소속팀이 2007년 K리그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주저앉은 걸 올 최악의 사건으로 꼽았다.
▲ (왼쪽부터) 이근호, 고종수, 이관우 | ||
이관우는 “시즌 막판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성남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을 때만 해도 이대로 챔피언이 되는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쉰 뒤 “마지막 순간 정규리그 1위 달성에 실패하고 힘 한 번 못 써본 채 포항과의 4강 플레이오프전에서 무너진 게 올해 가장 아쉬운 일이다. 팀의 주장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져 무척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김진규가 올해 가장 행복했던 일로 꼽은 건 올림픽대표팀의 6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었다. “(올림픽 최종예선전인) 바레인전을 앞두고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한 김진규는 “본선에 진출한 순간 정말 기뻤다”고 환하게 웃었다.
2007년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난 이근호(대구). “가장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한 두 개가 아니라”며 넉살 좋게 웃었다.
지난해까지 인천의 2군 선수로 숨죽였던 그는 올해 대구로 이적하면서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고 올해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한국인 공격수라는 영광도 안았다. 또 핌 베어벡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올림픽대표팀의 핵심선수로 발돋움했다.
▲ 김진규 | ||
2007년을 행복한 일로만 가득 채운 이근호. 하지만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11월17일 우즈베키스탄과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5차전에서 부진했을 때다. “박성화 감독님한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안 돼 정말 속상했다.”
올시즌 재기 무대에 성공한 고종수(대전)는 수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김호 감독과 대전에서 다시 사제지간으로 만난 게 올해 가장 행복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8월 12일 포항전을 통해 K리그 복귀전을 치른 고종수는 김 감독의 배려 속에 점차 출전 시간을 늘려갔다. 그의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대전은 연승가도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고종수는 6강 진출의 분수령이던 9월 30일 전남 드래곤즈전에서 후반 막판 짜릿한 왼발 역전 결승골을 작렬하며 837일 만에 골 맛을 봤다. 고종수는 골을 넣고 특유의 골 뒤풀이인 공중제비를 돈 일을 올해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전광열 스포츠칸 축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