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용산에서 만난 마해영은 롯데 입단 각오를 밝히며 “고향팀에서 다시 뛰게 돼 너무 기쁘다. 고참으로서 팀이 플레이오프에 다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전에 했던 퍼머가 풀려서 다시 ‘뽀글이 퍼머’를 했다는 마해영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기자가 ‘경악’을 금치 못하자 잠시 화장실에 들러 물로 머리를 추스르고서야 다시 나타났다.
▶▶▶5000만 원의 의미
만약 마해영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면 기자도 쉽게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 같다. 더 ‘정신없어진’ 헤어스타일에다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엑스 자로 가방을 둘러 멘 그가 ‘마포본색’ 마해영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꾸미지 않고 다니냐?’고 말했더니 “잘 차려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기 때문에 수수하게 입고 다니는 게 편하다”란 대답이 나온다. 전철 애용자로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기보단 ‘마해영과 비슷하게 생겼다’라고 재미있어 하는 시선들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그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야구 선수는 평상복보다 유니폼 입고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라고.
그렇게 편한 유니폼을 드디어 입게 된 마해영이다. 롯데와 1년간 5000만 원의 연봉으로 계약에 성공한 것. 4년 전 FA가 됐을 때 KIA 타이거즈로부터 28억 원이란 거액을 받아냈고 지난 해까지만 해도 비록 2군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LG에서 4억 원 대의 고액 연봉자가 ‘고작’ 5000만 원의 연봉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게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롯데로 테스트를 받으러 가면서 돈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연봉의 많고 적음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 야구를 계속 하느냐 못 하느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죠. 계약을 하고 나니까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는데 그런 반응을 접하면서 ‘마해영이 인생을 헛 살지는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언론에선 FA가 된 후 4년간의 시간을 ‘잃어버린 야구 인생’으로 폄하하는데 돌이켜보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훨씬 더 많은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바닥에서 헤맨 4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받는 거 아니겠어요?”
▶▶▶로이스터 감독과의 궁합
마해영은 구단과 계약 후 제리 로이스터 감독으로부터 뜻밖의 인사를 들었다. 먼저 악수를 청한 로이스터 감독이 “우리 팀과 계약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던 것.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감독님으로부터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어요. 정말 가슴이 뭉클거릴 정도로 감동스러웠습니다. 나이 많은 선수라고, 다른 팀에서 쫓겨난 선수라고 선입견을 갖지 않고 테스트 내내 야구선수 마해영으로만 절 보셨거든요. 그런 감독님의 마인드가 너무 존경스러웠고 며칠 새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생겼어요. 그런데 저한테 계약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니까 제 감정이 북받칠 수밖에요.”
로이스터 감독은 마해영의 영어 실력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마해영과는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려 한다고. 그러나 마해영은 “천천히 말씀하시는 건 알아듣겠는데 빨리 말씀하시면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저에게‘연료 탱크에 가득 찬 가스가 다 날아갈 때까지 열심히 해보자’란 말씀을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하셨는데 알아듣는 척만 했지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라고 설명한다.
“만약 국내 감독이었다면 전 롯데에 갈 수 없었을 겁니다. 솔직히 제 존재가 부담스럽잖아요. 데려오면 써야 하고 안 쓰면 (팬들의 성화에) 시끄러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구단에서도 빨리 결정하지 못했는데 감독님이 절 좋게 평가하셨던 것 같아요.”
▲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
지난 1월 10일 롯데로부터 입단 테스트를 제의받을 때만 해도 마해영은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다고 한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은 마음에 훈련지인 김해 상동야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러나 이런 거 저런 걸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잖아요. 야구인생의 바닥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롯데마저 놓치면 ‘쫑’나는 거니까. 후배들과 어울려 훈련을 시작하는데 좀 ‘뻘쭘’하더라구요. 제 유니폼도 없는 데다 선수단 미팅 때는 미계약자 신분이라 낄 수가 없었거든요. 소속감도 없고 좀 씁쓸했었죠. 그런데 의외로 후배들이 잘 챙겨주더라구요. ‘설마 선배님을 불러다 놓고 계약을 안 하겠느냐’면서 ‘걱정 마시고 감독님에게 좋은 모습 보여 달라’는 등 용기도 주고 격려도 받고 그랬어요. 후배들을 보면서 미안했고 고마웠습니다. 이전에 제가 그들에게 별로 잘 해주지도 못한 것 같은데 너무 소중한 마음들을 보여줬거든요. 특히 배장호, 이 놈은 절 아예 울리네요.”
배장호(21)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등번호 49번을 달고 뛰었던 롯데의 잠수함 투수다. 마해영이 롯데와 계약하면서 내걸은 유일한 조건은 49번의 등번호를 달게 해달라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배장호가 순순히 등번호를 내놓으면서 자신의 미니 홈피에 ‘49번이라는 번호가 이제야 제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롯데의 전설이 다시 돌아오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란 내용의 글을 올려놓았던 것. 이 글을 본 마해영은 후배의 진심어린 축하에 너무나 행복했다면서 후배들로부터 받은 감동을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진다.
▶▶▶양준혁과의 비교
마해영의 계약 내용이 알려지면서 올해 삼성과 2년간 최대 24억 원에 계약한 양준혁과의 상반된 처지가 관심을 모았다. 비슷한 시기에 프로야구판에 나타나 ‘좌준혁-우해영’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한국 프로야구의 간탄 타자로 대접받았던 두 선수의 ‘현재’가 너무 극명히 엇갈렸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충분히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 저도 한때 준혁이 형 몸값이 부럽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지난 성적만 놓고 보면 삭감은 당연한 겁니다. 제가 준혁이 형보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러나 못지않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도 있구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제가 삼성에 있을 때는 준혁이 형의 기록을 거의 다 쫓아갔거든요. FA가 되고 나서 다 까먹었지만 말예요.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요. 따라잡기엔 힘들지 몰라도 비슷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전 그게 정답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