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농구협회(KBA), 한국프로농구연맹(KBL), 한국여자프로농구연맹(WKBL) 등 농구 3단체의 실권을 모두 연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농구 발전을 위한 행정이 아닌 연세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코드 인사에만 열중하는 것 같다.”
지난 3월 20일 <일요신문>에 전화를 걸어온 한 대학 감독의 토로다. 다른 건 몰라도 농구협회의 김상웅 전무, KBL의 김인건 전무, WKBL의 김동욱 전무가 모두 연세대 출신인 것은 맞다. 이런 비난에 당사자들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하는 것도 당연지사다.
그럼 사건을 들여다보자. 지난해부터 농구 3단체에서 연세대 인맥이 농구판을 좌지우지한다는 뒷담화가 나왔지만 갈등의 본격적인 외부 노출은 지난 1월 말 발생했다. 바로 2008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여자 국가대표 코칭스태프 선정이 화약고에 불을 지른 셈이 됐다. 연세대 출신의 정덕화 삼성생명 감독과 명지대 출신의 조성원 국민은행 코치를 각각 대표팀 사령탑과 코치에 임명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당초 농구협회는 지난해 올림픽예선전을 치르면서 올림픽 티켓을 따온 대표팀 지도자가 올림픽까지 치르기로 이사회를 통해 공식 결정했다. 나중에 이해관계에 따른 뒤집기를 방지하기 위해 이사회 회의록은 물론 녹취까지 떠놨다.
유수종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여자대표팀은 지난해 6월 아시아선수권에서 7전 전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8년 만의 우승과 함께 2008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가져왔다.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에 빛나는 한국여자농구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전패 예선탈락, 2006도하아시안게임 노메달, 박명수 전 대표팀 감독의 성추행 등으로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나온 쾌거였다.
하지만 집행부가 바뀐 농구협회는 올 초 기존안을 번복했다. 그것도 보수와 지위가 보장된 사상 첫 전임감독을 앞두고 말이다.
유수종 전 감독은 “참담함을 넘어 가벼운 분노까지 치민다. 공을 세운 사람에게 명예로운 퇴진의 기회도 주지 않은 일방적 횡포”라고 하소연했다.
이번 국가대표 감독은 전임감독인 까닭에 남녀를 불문하고 현직 프로팀 지도자는 꺼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협회는 과감하게 ‘정덕화 카드’를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최부영 경희대 감독은 “눈가리고 아웅하기다. 아직 현직인 연세대 후배의 장래를 보전해준 것”이라고 개탄했다. 더욱이 조성원 코치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농구에 뛰어든 지 채 1년이 안 된 신참 지도자를 국가대표 코치로 뽑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욱이 조성원이 스스로 이를 거부하고 있는데 협회가 밀어붙이고 있다는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일로 최부영 감독은 김상웅 전무와 고성이 오가는 설전까지 벌였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이사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결정된 사항인 까닭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불씨는 남자쪽으로 옮겨 붙었다. 3월말 확정 예정인 남자 대표팀 감독 공모는 연세대 출신의 김남기 SBS 해설위원과 고려대 출신인 김동광 전 SBS 감독이 2파전을 펼치고 있다. 농구협회와 KBL이 김남기 위원을 적극 밀고 있는 가운데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다는 비연세대파의 저항이 물밑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남기 위원은 “오히려 나는 피해자다. 정당하게 실력으로 평가받은 후 공모에서 탈락하면 아무 문제없다. 오히려 여자 대표팀 감독 선임 건으로 ‘연세대는 안 된다’는 의견이 비등해 솔직히 피해를 보고 있다. 하도 시끄러워 그냥 마음 비우고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