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 임창용. | ||
서로가 인정한 ‘라이벌’
지난 2000년이었다. 물론 이승엽과 임창용은 당시 삼성 소속. 정규시즌 말미에 기자가 이승엽에게 질문을 했었다. “1점차로 지고 있는 9회말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나가야하는 상황이다.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투수를 한 명만 고르라면 누구인가?” 이승엽은 잠시 고민하더니 “임창용”이라고 답했다. 비슷하지만 거꾸로 된 질문을 임창용에게도 했다. “1점차로 앞서있는 9회말 2사 만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타자를 한명 골라 달라”고 했더니 임창용은 “(이)승엽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같은 팀이라서 맞대결할 기회가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둘은 서로를 최고의 투수와 타자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로야구의 모든 타자들이 임창용을 두려워했고, 모든 투수들은 이승엽과 만나기를 꺼렸던 시절이다. 투수와 타자는 평소 팀 훈련 때에도 스케줄이 다르고, 어울려 다닐 기회도 별로 없다. 때문에 이승엽과 임창용도 돈독하거나 절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반면 두 선수의 아버지간에는 왕래가 잦았다.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 씨는 “90년대 후반에는 선수들 부모끼리 봉고차 한대에 몸을 싣고 전국 야구장을 돌아다니며 아들의 경기를 응원하곤 했다. 창용이 아버지와도 그때 항상 같이 다니곤 했다”고 회상했다.
먹성도 쏙 닮은 동기생
기자는 4년의 시차를 두고 이승엽, 그리고 임창용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2004년 말의 일이었다. 지바 롯데 첫 해에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남기고 돌아온 이승엽을 대구의 한 베트남쌀국수 음식점에서 만났다. “2004시즌의 이승엽은 선수도 아니었다”는 스스로의 발언에도 놀랐지만 그보다도 대식가인 이승엽의 식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게 흥미로왔다. 초등학교 동창생이 운영하는 베트남 스타일 음식점에서 이승엽은 두 사람의 식사 주문으로 요리 3접시와 샐러드까지 잔뜩 주문했다.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하던 이승엽은 접시가 비자, “이제 밥 먹어야죠” 하더니 가장 큰 사이즈의 쌀국수를 주문했다. 이미 배가 부를 대로 부른 기자도 이승엽의 성화에 못 이겨 작은 사이즈의 쌀국수를 시켰다. 국물까지 싹 비운 이승엽의 다음 얘기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즘 체중 관리하기 때문에 별로 안 먹는 편입니다.”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에 전훈캠프를 차린 한국 구단을 취재하러 갔다가 내친김에 야쿠르트 숙소 근처에서 임창용과 만나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한국식 불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만나 에이전트, 통역과 함께 모두 4명이 갈비를 구웠다. 그날 가장 젓가락을 바삐 움직인 임창용은 혼자서만 족히 5~6인분 정도의 양을 먹었다. 군살 없는 임창용의 몸매를 보면서 ‘대체 그 많은 음식이 들어갈 공간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임창용은 “마무리는 비빔밥으로 하죠”라며 또다시 종업원을 호출했다. 4년 전 이승엽의 모습이 중첩되자 웃음이 나오려했다.
달라진 위상, 새로운 출발
같은 시기에 출발해 비슷한 타이밍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두 선수지만 현재 이승엽과 임창용은 상당히 다른 위치에 서있다. 2003년 56홈런으로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최고 인기팀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자리매김한 이승엽은 승승장구했다. 요미우리에선 지난해 말 5000만 엔이 깎였는데도 연봉 6억 엔(61억 7000만 원)을 받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최고 몸값 수준이다.
반면 야쿠르트 첫해에 임창용의 보장된 몸값은 30만 달러(3억 500만 원)에 불과하다. 물론 개막전 엔트리 포함 여부 등 세세한 인센티브를 모두 따낼 경우 100만 달러를 훌쩍 넘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거 명성에 비하면 임창용에게 보장된 금액은 턱없이 낮은 상황이다. 최근 몇 년 간 이렇다 할 성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임창용은 삼성 시절 무리하게 해외진출을 시도하다가 팀에 잔류하면서 헐값 계약을 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지금도 “그때 창용이가 FA가 된 다음에 얌전하게 계약했다면 충분히 40억 원 이상을 줄 생각이 있었지만 본인이 잡음을 많이 일으킨 뒤 돌아오는 바람에 몸값을 후려쳤다”고 얘기한다. 이후 임창용은 2005년 가을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뒤 1년 넘게 재활을 했고, 2007년에도 5승7패, 방어율 4.90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야쿠르트에 입단했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연봉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임창용은 “돈보다도 일본 리그에 대한 호기심과 해외 진출에 대한 꿈 때문에 야쿠르트에 입단했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과거 성적은 임창용 압승
야쿠르트와 요미우리는 같은 센트럴리그에 속해있다. 양팀간에 무려 24경기나 치러야하기 때문에 임창용과 이승엽이 경기 후반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운명적으로 마주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질 것이다. 임창용은 해태 시절인 95년부터 98년까지 삼성과의 경기에서 이승엽을 여러 차례 상대했다. 통산 기록은 23타수 3안타로 피안타율 1할3푼. 탈삼진도 무려 10개였다. 따라서 초창기 시절 둘간의 맞대결에선 임창용이 이승엽을 압도했었던 셈이다. 안티 요미우리 진영의 한 팀인 야쿠르트가 임창용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과거 성적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물론 10년도 지난 성적이다. 지금의 이승엽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량이 성장했다. 그래서 흥미롭다. 10년 만에 펼쳐질 동기생들의 맞대결은 그 결과를 점칠 수 없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것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승엽과 ‘풍운아’ 이미지가 강했던 임창용. 임창용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결하자마자 승엽이한테 몸에 맞는 볼을 던지면 욕먹겠죠? 하하, 농담이구요. 저도 승엽이와의 대결이 기대됩니다”라고 말했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