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희 감독 대행은 위암 수술로 자리를 비운 이희완 감독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채워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고려증권의 마지막 주장이었던 이 코치는 김호철-신영철로 이어지는 ‘컴퓨터 세터’의 계보를 잇다 1998년 팀 해체 후 독일을 거쳐 대한항공에서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지난 4월 1일 GS칼텍스 용인 숙소에서 김상우 해설위원이 이 코치를 만났다.
김상우(김): 형(이성희 코치와 김상우 위원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정말 축하해요! 난 형이 해낼 줄 알았다니까!
이성희(이): 내가 해낸 게 아니야. 선수들이 만들어낸 거지. 나보다 선수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어. 힘든 체력 훈련도 묵묵히 참아냈고.
김: 흥국생명이 3연패에 도전했다가 챔피언결정전에서 1-3으로 무너지고 말았잖아요. 완전 이변이었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
이: 4차전 때 황현주 감독의 심판에 대한 어필은 분명 문제가 있었어. 지도자가 선수보다 좀 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부분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지. 상우한테는 미안하지만(삼성화재 시절 삼성화재의 9연패를 두고 하는 말) 어느 종목이든 한 팀이 3연패 이상 가면 재미 없다고 생각해.
김: 정규리그 동안 GS칼텍스는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선수들끼리 손발이 안 맞아 보였어요. 패배 의식도 강해 보였고.
이: 나도 몰랐는데 우승한 다음에 선수들에게 물어 보니까 의외로 선수들 마음 속 깊이 패배 의식이 자리해 있었더라고. 호남정유 시절 선배들이 일궈놓은 업적을 후배들이 망쳐놨다는 주위의 얘기들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었고. 한 번 팀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올라서기 힘들거든. 우리 팀이 다 이기고도 뒤집어지는 경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잖아.
김: 시즌을 치르면서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 여자농구 성추행 파문이 불거지면서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어. 전혀 근거도 없이 팀 분위기를 해치는 음해성 소문들로 인해 모든 자리를 내놓고 떠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기도 했고.
김: 무슨 소문이었어요?
이: 내가 이혼 소송 중이라느니 몇몇 선수랑 ‘썸씽’이 있다느니, 나랑 사이가 좋지 않은 아무개 선수가 작전타임 불러도 혼자 겉돈다느니 등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 모든 소문은 다른 구단으로부터 흘러 들어와. 마치 사실처럼 말이야.
김: 선수들과의 관계가 묘해졌겠어요.
▲ 프로 진출 후 첫 우승컵을 차지한 GS칼텍스. | ||
김: 지금 수석코치로 감독대행을 맡았잖아요. 이희완 감독님이 내년에도 팀을 맡지 못하신다면 형이 이 팀을 이끌어 가는 건가요?
이: 만약 이전에 나한테 팀을 맡으라고 했다면 고사했을 거야.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은 욕심이 생겼어. 믿고 맡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젠 잘할 자신도 있고 어느 정도 경험도 쌓았고. 그러나 이런 말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아.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으니까.
김: 만약 이 감독님이 투병으로 인해 감독직을 내놓고 구단에서 다른 지도자를 데려온다면 형은 어떻게 할 거예요?
이: 당연히 그만둬야지. 새로 오신 분도 껄끄럽고 나 또한 불편하고. 코치로 재직하면서 감독님을 두 분이나 모셨는데 또 다시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면 힘들지 않겠어?
김: 우승감독상을 놓고 GS칼텍스 측과 한국배구연맹(KOVO)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요. 감독대행으로 팀을 우승시킨 장본인으로서 감독상을 누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당연히 이희완 감독님이 받아야지. 물론 시즌 중반부터 챔프전까진 내가 벤치를 지켰지만 지금의 GS칼텍스를 만든 분은 이 감독님이거든. 이 감독님이 그 상을 받으시고 힘내셔서 병도 이겨내셨으면 좋겠어.
김: 혹시 남자팀 지도자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계속 여자팀만 맡으셨잖아요.
이: 당연히 있지. 지금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고 싶어. 남자 대 남자로 생활한다면 이전과는 또 다른 배구 지도자의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여자 선수들은 성격이 섬세해서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워. 하지만 여자팀은 잔재미가 무궁무진하지. 끈끈한 정도 있고.
이성희 코치는 현대캐피탈의 김호철 감독을 지도자의 롤모델로 삼았다.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이 코치한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모양이다. 감독대행, 수석코치로서의 애환이 그곳에 존재했고 지도자로서의 보람 또한 그곳에 존재했다. 그래서 모든 선수나 감독들이 ‘우승’이란 열매를 따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다는 ‘깨달음’을 안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KBS N 해설위원
정리=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