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수영대회에서 400m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박태환 선수. 연합뉴스 | ||
박태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베이징 골드까지의 ‘로드맵’은 어떻게 될까. 올림픽 100일을 앞두고 ‘박태환 궁금증 풀이’를 해봤다.
동아수영대회가 끝난 후, 기자 회견 자리에서 박태환은 “외박은 내 생명입니다(웃음)”라며 노민상 감독에게 ‘공식적으로’ 외박을 요청했다. 이에 노 감독은 “선수만 열심히 해준다면…(허락해줄 수도 있다는 의미)”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박태환은 “열심히하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답했다. 마치 영화 <아라한장풍대작전>에서 순경 류승범의 말투로 말이다.
박태환의 지난 겨울 슬럼프는 사생활 관리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 남동생이 됐고, 이전 태릉 생활과는 달리 전담팀에 속해 서울 강남에서 출퇴근하며 운동하다 보니 주위에서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원더걸스 멤버와의 열애설까지 불거졌다.
노 감독은 2월 26일 말레이시아 전지훈련에서 박태환과 재회한 후 먼저 ‘외박 외출 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과학적인 분석, 강도 높고 체계적인 훈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 창출이 시급했던 것이다. 실제로 박태환은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후 60여 일이 넘도록 외출은 딱 2번뿐이었다. 한라배대회가 끝난 후인 3월 말 첫 외출이 있었고, 동아배 쾌거 직후인 이번 4월 23일에야 두 번째 ‘컴백 홈’이 가능했다.
11년 전부터 박태환을 가르쳐온 노민상 감독은 눈빛만 봐도 제자의 마음을 안다. 노 감독은 “태환이 심정을 잘 안다. 본인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주변에서 건전하게 놀도록 그냥 놔두지 않는 게 현실이다. 베이징올림픽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참자”라고 당부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미안했을까. 스스로 “태환이에게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는 노민상 감독은 2월 26일 박태환과 재회한 후 지금까지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있다. 제자가 외박 외출을 못해 힘들어한다면 자신도 생활적으로 무엇인가는 희생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워터큐브는 2008베이징올림픽의 수영 메인 경기장이다. 최첨단 시설, 눈에 띄는 디자인, 웅장한 규모 등으로 화제를 낳고 있다. 한국 수영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난해 이곳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 올림픽경기장을 몸으로 익혔다. 하지만 당시 개인훈련을 하던 박태환은 이 기회를 놓쳤고, 아직까지도 절체절명의 승부가 펼쳐질 워터큐브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부정 출발로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짐을 꾸려 돌아온 박태환에게 올림픽경기장 체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대한수영연맹이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측과 접촉, 박태환의 현장체험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베이징의 유력인사들까지 동원하고 있고 현재는 그저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 노민상 감독 | ||
4월 25일부터 훈련을 재개한 박태환은 5월 중순께 괌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베이징 무더위에 대비한 훈련이다. 6월 베이징 워터큐브 훈련을 계획 중이지만 무산될 경우 바로 다시 해외전훈을 실시할 계획이다. ‘외박과의 전쟁’도 문제지만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국내 언론의 취재 요청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수영대회에서 박태환은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원래 밝은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지나치게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니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거꾸로 이것이 ‘건방지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이런 박태환이 이번에 ‘인사맨’으로 변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현장의 취재진도 더없이 반겼다. 이전에는 멘트 하나 듣기 힘들었는데 먼저 웃으면서 말문을 여니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졌다.
노민상 감독은 “스타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선후배는 물론이고, 특히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서 만나는 만큼 잘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걸 태환이가 너무도 잘 따르고 있다. 원래 근본이 착한 아이지만 요즘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정도로 주변에 잘한다”고 말했다.
박태환의 이번 아시아신기록은 내용 면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 금메달보다 값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아시아신기록은 세계적인 선수들(주로 헤켓)과 경쟁하면서 자연스레 작성된 반면, 이번에는 경쟁자 없이 나홀로 역영을 펼치며 달성했기 때문이다. 모두 박태환이 정신적으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태환은 동아대회에서 400m에서는 반신수영복을, 200m 전신수영복을 각각 입었다. 둘 다 신기록을 작성했지만 올림픽에서는 이전부터 입었던 반신수영복을 입을 계획이다. 전신수영복은 올해 세계신기록을 양산하며 큰 화제를 낳고 있다. 하지만 박태환에게는 아직 2%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노민상 감독은 “스피도의 전신수영복은 확실히 우수한 제품이다. 과학적으로 4.5~5%에 달하는 기록 감축 효과가 있다는 것을 우리 대표팀도 검증했다. 하지만 태환이는 어깨쓸림 현상 등 확실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선수가 가장 중요하다. 반신수영복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일단은 전신을 입지 않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대한 로드맵도 얼추 나왔다. 일단은 무조건 400m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400m는 올림픽 개막(8월 8일) 다음 날인 9일에 예선전이 열린다. 결승은 다음날 오전 10시. 대회 초반 여기서 일을 낸다면 젊은 코리안 마린보이가 그 상승세를 바탕으로 1500m 장거리에서 이변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