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김경문 감독. | ||
쉽게 알리지도, 그렇다고 쉬쉬할 수만도 없는 직업병. 과연 프로스포츠 감독들은 어떤 직업병을 안고 있을까.
올해 프로야구는 무척 떠들썩하다. 신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끄는 롯데 자이언츠의 돌풍으로 전국이 출렁거리더니, 최근에는 SK 김성근 감독과 두산 김경문 감독이 대립각을 세우다가 이후에는 LG 김재박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아 김성근 감독을 공개 비난해 논란이 됐다. 본래 프로야구란 게 일단 시즌이 시작되면 바람 잘 날이 없다.
매일매일 피 말리는 승부 자체가 힘겹다. 여기에 경기외적인 감정싸움까지 벌일 경우 지도자들은 그야말로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선수들은 시즌 직전까지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지만, 감독에겐 시즌 시작이 곧 고생길 입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역시 술 담배가 문제?
요즘 KIA 조범현 감독만큼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 있을까. 메이저리거 서재응 영입,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호세 리마 영입, 거포 최희섭의 부활 등 온갖 호재를 안고 시즌을 맞이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연일 투타 엇박자에 시달리며 순위권 바닥에 머물고 있다. 조범현 감독은 본래 애연가다. 술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경우가 별로 없는 대신 속이 상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들곤 한다. 그런데 올시즌 들어 흡연량이 배가 됐다고 한다. 경기 중에도 덕아웃 뒤로 돌아가 한대 피워야 그나마 열 받는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조범현 감독은 “담배가 너무 늘었다. 줄여야지, 줄여야지 하면서도 팀 상황만 생각하면 저절로 담배 생각이 나니 참 죽을 맛”이라고 했다. 담배란 게 원래 막힌 속을 뚫어줄 리가 만무한 기호품 아닌가. 결국 조 감독은 가뜩이나 답답한 가슴이 담배 때문에 더욱 빡빡해진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라이터를 켜곤 한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2년 전에 20년 넘게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 술도 줄였다. 당시 간 검사에서 일반인에 비해 몇 배 높은 수치가 나오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우선 담배부터 끊은 것이다. 그 후 단 한 번도 담배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하니 선 감독의 금연 선언은 성공적으로 진행된 셈.
하지만 요즘도 선 감독은 술자리에서 입에 물고만 있는 ‘가짜 담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물고 있으면 박하향 같은 게 느껴지는 제품이다. 특히 같은 술자리의 지인들이 뻑뻑 담배를 피워대면 ‘가짜 담배’에 손이 더 많이 간다. 선동열 감독은 최근 “담배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데, 솔직히 말하면 팀 성적 때문에 열이 확 받을 때에는 에라 모르겠다, 한대 피워볼까 하는 유혹이 여전히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대신 선 감독은 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 혈압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 취임 후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영광도 얻었지만 쓸데없는 선물까지 받은 셈이다.
불면증과 혈압
SK 김성근 감독은 ‘야구와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는 지도자다. 예상대로 게임이 풀리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어떻게든 원인을 분석하고, 이튿날 경기에 대비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다보면 순식간에 새벽 3, 4시가 돼있어 늘 잠이 부족하다고 한다. 지난해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 2차전에서 연패하자 인천 문학구장의 감독실은 이튿날 새벽 4시까지 불이 밝혀져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혈압도 수시로 변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연장전에만 들어가면 혈압이 150~160 정도까지 올라 간다”고 털어놓았다. 평소 고혈압이 있는 건 아닌데도 스스로 자책하다보니 혈관벽이 좁아지는 것이다. 김 감독은 “가끔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은데 혈압이 걱정돼 포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호텔 바에서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몇 차례 목격됐다. 다른 구단 감독들과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다보니 혈압 걱정마저 잊은 셈이다.
성적이 곧 명약
두산 김경문 감독은 팀 성적이 나쁠 때면 두통과 뒷목이 뻣뻣해지는 증세에 시달린다. 보통 약을 먹지 않고 버티는데 희한하게도 연승 몇 번이면 이 같은 증세가 싹 사라지곤 한다. 한 주간 6경기에서 5할 이상을 하면 멀쩡해지고, 5할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목이 뻣뻣해진다고 하니 이것도 분명 직업병이다.
지난해 현대 사령탑을 맡았다가 올시즌에는 KBO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시진 전 감독은 “승부 때마다 이를 악물기 때문인지 아랫니가 흔들거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가 아무리 아파도 정규시즌에는 치료받을 시간조차 없다. 잇몸까지 망가져있어 임플란트 시술을 받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성적이 좋을 때에는 치아에도 신경이 덜 쓰이고 별로 아프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