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왼쪽), 자크 로게 위원장 | ||
IOC 내부에 정통한 한 체육인은 최근 <일요신문>에 “1996년 IOC 위원이 된 이건희 회장(1942년생)은 8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개인자격의 IOC 위원이다. 개인자격은 원래 종신이었지만 솔트레이크사건 이후 정화바람이 불면서 80세로 제한됐다. 이와 함께 재심사 규정도 있었는데 이건희 회장은 당초 만 20년째인 2006년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로게 위원장 집권 이후 2009년으로 바뀌어졌다”라고 밝혔다.
이는 이건희 위원이 로게 위원장과 특별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물증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로컬스폰서로 활동한 이래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올림픽파트너가 됐고, 2016년까지 모든 여름·겨울올림픽을 후원하기로 IOC와 계약했다. 4000만 달러에 달하던 후원금도 6500만 달러 이상으로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삼성이 IOC의 ‘돈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IOC에게는 이건희 회장이 ‘평범한’ IOC 위원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앞서 로게 위원장은 2004년 11월 부인 안네 보빈과 극비리에 방한, 삼성의 리움미술관에서 이건희 회장 및 한국의 유력 정치인과 회동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후 2005년 김운용 전IOC 위원의 사퇴와 또 이에 대한 조건으로 태권도 올림픽정식종목 유지, 한국인이 김운용 IOC 위원직 승계, 2014평창동계올림픽 지원 등의 삼각빅딜설이 터져 나왔다. 로게 위원장은 2006년 4월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에 참석차 서울에 왔을 때 리움미술관에서 이건희 회장과 공식적으로 만찬을 갖기도 했다.
이처럼 로게 위원장과 이건희 회장의 돈독한 관계는 이번 삼성특검여파로 인한 IOC 위원직 유지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물론 향후 이건희 회장에 대한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비리에 대해 엄격하게 ‘무관용정책’을 펼치고 있는 IOC가 최소한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스터 클린’으로 불리는 로게가 형평성을 뒤집으며 이건희 회장만 봐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IOC로서도 이건희 회장을 쉽게 내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에서 밝혔듯이 로게 위원장이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두텁고, 삼성은 ‘TOP(The Olympic Partner)’으로 불리는 IOC의 최대 스폰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정과 관례상 일단 이건희 회장의 유죄가 확정되면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겠지만 이후 최종 퇴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용성 전 IOC 위원(국제유도연맹회장 자격)의 경우처럼 자격정지 후 한국의 사면복권을 기다렸다가 IOC 위원 자격을 회복시켜줄 가능성이 농후하다(박 회장은 이후 자진사퇴). 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IOC 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퇴출 투표가 벌어진다고 해도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기는 힘들 전망이다. 한 국제스포츠외교 전문가는 “이건희 회장이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타의에 의해 IOC에서 영구적으로 쫓겨나는 일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 김운용 전 위원 | ||
실제로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요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광주 U대회의 명예유치위원장으로 오랜만에 국제 스포츠외교현장을 누비고 있다. 광주가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탓에 객관적으로 불리하지만 김 전 부위원장 특유의 넓은 인맥을 통해 3개월의 광주가 6년의 카잔(러시아)에 극적인 역전을 거둘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김 전 부위원장의 한 측근은 최근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기소도 되기 전에 IOC가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반면 박용성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경우는 최종 유죄판결까지 IOC가 기다리고 있다. 이는 로게 위원장이 자신의 최대 정적인 김운용 전 부위원장을 제거하기 위한 불공평한 처사였음을 역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 유명한 ‘삼각빅딜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등 제3의 한국 IOC 위원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고, 지난 수년간 태권도를 중심으로 국제스포츠외교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조 총재는 국제기구 단체장 자격으로 IOC 위원에 도전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에리사 촌장은 경기인 출신에다가 학계(용인대교수)와 체육행정을 거친 보기 드문 여성 스포츠인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두 명 모두 지극히 폐쇄적인 IOC 내부에 정통하지 못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