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의 간판 홍성흔이말도 많고 탈 많았던 스토브리그 후 자신의 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금은 ‘삼겹살’이지만 다시 ‘꽃등심’으로 돌아가겠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파이팅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수. 때론 ‘오버맨’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지만 일단 운동장에 나서면 신명나는 야구 춤을 추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선수. 두산 베어스의 얼굴인 홍성흔이 벌써 프로 10년차에 서른한 번째 생일을 넘겼다. 지난 겨울 그는 프로 데뷔 후 가장 혹독한 오프 시즌을 보냈다. 트레이드 요구 파문이 불거지면서 팀의 전지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포수의 자리도 일단 잃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그는 4월에 3할2푼4리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혹독한 개인 훈련에 상상을 초월한 스트레스, 그리고 최근엔 몸살까지 겹치며 예전보다 눈에 띄게 홀쭉해진 홍성흔을 잠실야구장에서 만났다. 그의 넘치는 열정과 끼는 여전했다.
민훈기(민):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홍성흔(홍): 작년 96kg에서 현재 86kg이니까 거의 10kg쯤 빠졌다.
민: 대부분 운동으로 뺐겠지만 너무 많이 빠졌다.
홍: 운동 반 스트레스 반이라고 봐야겠다. 운동만 해서 이만큼 빠지기는 힘들고 스토브리그 때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
민: 아직 시즌 초반이다. 성적(4월 19게임에서 3할2푼4리 14타점)이 좋은데 컨디션은 어떤 편인가.
홍: 지난 겨울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시합은 나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어린 후배들(배재고)과 합숙과 야간 훈련까지 하는 등 운동을 많이 했었다. 그때의 ‘원초적인 훈련’과 정신적인 ‘느낌표’들이 플레이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몸살이 와서 감이 좋은 편은 아니다.
민: 그래도 복귀전은 포수 마스크를 썼다.
홍: ‘아, 진짜 이건 됐다’ 하는 생각도 했다(웃음). 비록 시합에 지기는 했어도 나름대로 좋은 송구도 보여주고 괜찮다 생각했는데 바로 하루 쉬고 다음 경기에서 도루 4개인가를 줬다. 계속 (도루를) 주니까 집중이 안 되고 리드도 잘 안 되고 그러더라.
민: 기록상으로는 1000게임을 넘게 뛰며 실책이 60개도 안되고 나쁘지 않다. 도루는 반은 투수 책임인데 스텝이나 송구 능력 등에 대해 본인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민: 송구 부진은 부상 여파 등이라고 하더라도 투수 리드는 갈수록 노련해지는 것 아닌가.
홍: 던지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보니까 투수 리드에 집중을 못하고 소홀해지더라. 내가 감독님이었다고 해도 작년의 홍성흔은 포수로 기용 안 했을 것이다. 수술하고 야구를, 프로야구를 너무 쉽게 봤다. 몸이 안 아프기에 나가면 이전처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포수 마스크를 쓰니까 송구할 때 2루가 무지 멀어 보이고, 다리의 풋워크가 잘 안되고, 관중은 많은데 내가 여기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좋은 것들을 많이 잊게 되더라. 재활에 신경 쓰고 몸을 확실히 만들었어야 했다.
민: 힘든 겨울을 보내면서 야구에 회의를 느끼진 않았나.
홍: 솔직히 와이프에게 그랬다.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자고.
민: 야구가 싫은 것은 분명 아니었을 텐데.
홍: 그건 절대 아니다. 사실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겁난다. 정말 자제하고 인터뷰를 가급적 안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것들이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도 됐다.
민: (트레이드 요청이)후회가 되나?
홍: 아~. 연봉은 많이 깎였지만 인생의 공부를 뼈저리게 했다. 그 엄청난 스트레스, ‘사람이 이래서 약 먹고 자살하는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민: 오랜 야구 생활을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투수들은 누구인가.
홍: 우선 구대성 선수. 시드니 올림픽 때 대성이 형의 공은 잊을 수가 없다. 미트만 갖다 대면 대는 곳으로 바로 공이 내리 꽂혔다. 그 형의 배짱은 정말 인상 깊었다. (박)찬호 형도 98년에 만나고 WBC 때 다시 만났는데, 뭐랄까 감동을 주는 선배다. 얼마 전에 ‘첫 승 축하한다’는 문자를 드렸더니 ‘고맙다’며 ‘오히려 너한테 내가 많이 배운다’라고 답을 하셨더라. 늘 좋은 말을 해주시고 그런 대스타가 어린 후배에게 보고 배운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며 가슴이 울컥 했다.
민: 다시 ‘꽃등심’이 돼야하지 않겠나.
홍: 아, 물론이다. 이제 ‘차돌박이’ 쯤으로 조금 올라간 것 같은데 꼭 ‘꽃등심’이 다시 돼야겠다(웃음). 그동안 감독님과 팀과 팬들에게 속 썩였던 부분을 운동장에서 다 갚겠다.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