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많은 골프선수가 배출되고 있지만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사진은 갤러리를 몰고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미셸 위(위성미) 선수. | ||
월 500만 원 있으세요?
경기도 분당에서 고등학생 딸에게 골프를 시키고 있는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골프를 시키려면 일주일에 두 번은 필드(골프장)에 나가야한다. 한 번 나갈 때 그린피, 캐디피, 식사, 차비 등을 합쳐 최소로 하면 25만 원이 든다. 한 달이면 200만 원이다. 레슨비도 100만 원은 나간다. 연습장 비용을 40만 원으로 잡고, 장비구입에 이것저것 경비를 포함하면 못해도 400만 원은 든다. 여기에 중간중간 대회에 나가야 한다. 대회가 보통 지방에서 열리기 때문에 부모가 동행한다. 숙식비에 연습라운드 비용 등 이것저것 합치면 수백만 원이 든다. 월 평균 5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또 한국은 겨울이 추워서 연습이 안 되니까 해외로 동계훈련을 보내야 한다. 1000만 원 이상 깨지는 건 예삿일이다. 1년에 8000만 원 정도 든다고 보면 된다.”
현재 A 씨의 딸은 한국중고골프연맹 등록선수로 비교적 상위권의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프로로 성공할 가능성은 물론이고, 대학진학 여부도 불투명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에 입문했으니까 지금까지 6년 동안 8000만 원씩 최소 4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성공적으로 프로선수가 된다고 해도 앞으로 최소한 2~3년은 더 돈이 들어가야 한다.
이렇다보니 경제력이 넉넉지 않은 경우 가정 경제가 큰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 계통의 안정된 공무원이었던 B 씨의 경우 치솟는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공직에서 나온 후 현재는 해외에 거점을 둔 인터넷 도박사이트에 투자해 돈을 벌고 있다. 위험부담이 있지만 당장 돈이 급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 딸은 이미 프로가 됐어도 그동안 뒷바라지를 하며 제법 큰 액수의 빚을 졌고, 또 딸이 아직 일류 프로가 못돼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는 바람에 주니어 때 이상으로 경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경우는 부모가 스스로 해결(?)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부족할 경우 주변에 신세를 지는 경우는 허다했다. 미LPGA 박희영의 아버지이자 대학교수인 박형섭 씨도 큰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빚을 다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를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아 보금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예 본격적으로 골프에 입문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골프를 해 성공한 박세리, 김미현 등의 일화는 극소수인, 즉 현실과는 동떨어진 고전이 된 지 오래다.
▲ 2006년 KTF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김미현 선수(왼쪽에서 두번째)와 이미나 선수(오른쪽). | ||
여자의 경우 세계 최고봉인 미LPGA투어도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미LPGA 프로는 미국에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많은 골프장 등이 그린피 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그야말로 여자 골프선수들의 꿈이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미LPGA 프로가 되려면 한국을 기준으로 10년에 8억 원 이상의 시간적 경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또 투어 생활 경비는 연간 2억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즉 연간 상금이 20만 달러라면 인건비를 뽑지 못하고, 저축을 할 수 없는 ‘똔똔인생’인 것이다. 2007년 미LPGA 상금 랭킹을 살펴보면 57위까지 20만 달러를 넘었다. 경비와 세금을 제하고 10만 달러 정도의 순소득을 올리려면 최소한 30위 이내는 들어야 한다. 2007년 투어에 출전해 상금을 받은 190명 중 160명은 순수하게 골프경제학으로 보면 적자인생인 것이다.
정일미 김송희 등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송영군 씨는 “1부 투어 하위랭커들은 끊임없이 돈 걱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정은 2부 투어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말이 프로이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쓰는 프로생활이다. 한국선수들이 많이 성공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미국으로 와서는 안 된다. 실제로 1, 2부 투어생활을 하다 소리없이 한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선수로서 자신감을 상실하는 등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경고했다.
물론 상금 외에 각종 스폰서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스폰서의 양과 질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낮아졌다. 제대로 된 스폰서십은 대부분 상위권 선수들에게 몰려 있다. 미LPGA 한국선수들 중에는 스폰서가 없는 선수가 더 많다. 국내 프로무대에서는 메인스폰서를 가진 선수가 30명 안팎이다. 여기에 스폰서 후원금이 크게 줄었다. 한때 박세리가 연간 30억 원, 김미현 10억 원 하던 호시절은 이미 다 지났다. 국내에서는 연간 2000만 원 수준의 스폰서십도 구하지 못해 쩔쩔맬 정도다. 전체적으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상위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면 경비를 충당할 수 있는 양질의 스폰서를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 남자프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88명의 KPGA 정회원 중 상금을 받은 선수는 148명에 불과하고, 이중 30여 명만 생계 걱정없이 투어생활을 하는 수준이다.
▲ 박세리. | ||
전체적으로 국내외 남녀 프로세계를 살펴보면 단 하나, 타이거 우즈, 최경주 등 걸어 다니는 스포츠재벌이 즐비한 미PGA만이 골프경제학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PGA는 한 대회 우승상금이 쉽게 100만 달러(10억 원)를 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스폰서가 따라붙는다. 이렇게 시장이 좋다보니 일단 투어멤버만 되어도 돈 걱정 없이 골프에 전념할 수 있다.
그래도 골프를 시키는 이유
이렇듯 골프의 세계는 ‘레드오션’이다. 실력이 빼어나지 않은 한 결코 투자비용을 뽑기 힘들다.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고도 성공가능성이 희박한 게임인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주니어골프 열풍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팀을 지도하기도 했던 C 씨는 “한국의 특수한 교육풍토와 관련이 있다. 주니어선수들은 대개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다른 종목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골프는 연습장과 골프장이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아 오전수업도 제대로 듣기 힘들다. 일단 골프를 시작해 몇 년의 기간을 투자하면 이후 다시 공부로 돌아오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골프에 입문하면 쉽게 발을 뺄 수 없다는 것이다. C 씨는 또 긍정적인 측면도 소개했다. “타 스포츠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경우 그 기술을 써먹을 데가 없지만 골프는 레슨프로 등으로 생계형 직업을 택할 기회가 넓다. 세미프로만 돼도 사람들에게 ‘프로님’ 소리 들어가며 제법 대접받는 삶을 살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해 일반인들이 접하는 프로골프는 대부분 승자의 세계다. 세계에서 골프비용이 가장 비싼 한국에서는 조금만 시선을 낮춰 내부를 들여다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마이너스 경제학이 판을 친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