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 통틀어 최고 연봉을 받고 흥국생명에 입단한 한송이. 현재 왼쪽 발목 재활 치료 중이지만 특별히 <일요신문>을 위해 모델 같은 포즈를 취해주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하지만 도로공사와의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받고 안고 당한 ‘상처’들은 한송이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했다. 스물네 살이란 많지 않은 나이에 구단의 계산법과 힘에 따라 선수의 인생이, 배구 생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현실을 제대로 느낀 것이다.
한송이는 지난 5월 15일 도로공사와의 재계약도 아니고 언니 한유미가 뛰고 있는 현대건설도 아닌 ‘미녀군단’ 흥국생명과 1억 5000만 원(남녀부 통합 최고 연봉)에 계약했다. 해마다 우승 후보 영순위로 꼽히는 흥국생명에 한송이가 입단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배구 관계자들은 여자배구팀 전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우려했지만 한송이 입장에선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난 21일, 재활 치료 중인 강남의 한 병원에서 한송이를 만났다.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위해 코트에서와는 달리 여성스럽고 섹시한(?) 의상을 준비한 한송이는 사진기자의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모델스런’ 포즈로 취재진의 감탄을 자아냈다.
“흥국생명으로 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김)연경이한테 문자가 왔더라고요. 왜 자기 이후로는 미녀 선수가 안 들어오냐면서(웃음). 현대건설행이 무산되고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을 놓고 고심했어요. 흥국생명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우승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아서예요. 또한 연경이나 (황)연주 등 평소 친하게 지낸 선수들도 많았고요. 한동안 우울증에 걸릴 만큼 힘들었는데 역시 시간이 약인 것 같아요.”
환한 미소가 매력적인 한송이는 FA가 되면서 1순위 도로공사, 2순위가 현대건설이었다고 한다.
“소속팀에 남는 게 최우선이었죠. 선수들과 정도 들었고 우승을 못해 본 한도 있었고요. 하지만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았어요. FA가 된 선수라면 구단에 자신의 몸값이나 대우에 대해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구단에선 절 죄인 취급했어요. 동등한 관계에서의 협상이 아닌 일방적인 강요라고 할까요? 제가 요구하는 몸값이나 조건을 듣고 너무 어이없어 했던 거죠.”
한송이는 도로공사 측에 맨 처음 제시한 조건이 연봉 1억 200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로공사 측에선 1억 원 이상은 절대 줄 수 없다고 맞섰고 이런 상황에서 원소속팀과의 우선 협상 기간이 지나가고 말았다. 한송이는 언니 한유미가 뛰고 있는 현대건설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송이와 단 한 차례도 접촉하지 않고 영입을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공사 수주건을 놓고 현대건설이 한송이를 영입하지 못하도록 도로공사로부터 외압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도로공사 측은 ‘절대 그런 일 없다’라고 강하게 반박했었다.
“처음엔 1억 원 이상은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다가 제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1억 2000만 원까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미 전 도로공사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어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절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세웠으니까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구단에서 모두 절 안 받아준다고 해도, 도로공사밖에는 선택할 팀이 없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 최악의 상황에서 다른 팀과 계약을 맺지 못한다면 돈을 적게 받더라도 외국 진출을 모색할 생각이었어요.”
5월 13일, 흥국생명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한송이를 영입할 뜻을 비쳤고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한송이의 부모는 딸이 가급적이면 비난의 총알받이가 되기보단 싫어도 도로공사로 돌아가길 원했다. 흥국생명으로 가게 될 경우 더 큰 화살이 한송이에게 몰려갈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이었던 건 여론의 방향이 선수 편이었어요. 기자분 들께서 제 입장을 잘 헤아려 주셨고 비교적 정확한 기사를 써주셨어요. 용기를 얻었고 다시 도전해보자는 오기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흥국생명 측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1억 5000만 원을 제시하며 그동안 마음 고생했던 부분을 보상해 줬어요. 물론 돈의 많고 적음이 입단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제가 흥국생명을 택한 건 선수를 존중하고 선수를 배려해주는 마음 씀씀이와 정성이었습니다.”
▲ 한송이의 언니 한유미. | ||
학창시절 배구선수로 활약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언니 한유미와 함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공을 잡았다는 한송이. 두 살 터울의 언니와 운동생활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언니한테 ‘맞고’ 살았다는 그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언니였다고 말한다.
“일부러 절 때린 건 아니고요, 언니가 엄마한테 혼나면 그 화가 다 나한테 돌아왔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더 작고 힘이 없었으니까 언니를 무서워했지만 중학교 3학년 이후론 언니가 ‘감히’ 절 때리지 못했어요. 제가 더 키가 커졌으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하면서 서로 다른 팀 소속 선수가 돼 코트에서 맞붙었는데 한 번은 경기에서 진 언니가 코트에서 대성통곡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 그걸 모르고 방방 뛰면서 너무 좋아했거든요. 나중에 현대건설 팬들로부터 욕 무지하게 얻어먹었어요. ‘너 친동생 맞냐?’이러면서요.”
트럭 운전 기사로 생업을 이어나간 아버지가 IMF로 힘든 생활을 영위해 나가자 한송이는 배구가 기울어진 가정 형편을 구원해 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단다. 언니와 함께 열심히 운동해 나가면 평생 딸들 뒷바라지하며 고생해온 부모님을 편히 모실 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렸고 결국 그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다.
“배구 선수한테 억대 연봉은 ‘꿈의 연봉’이에요. 더욱이 제가 남녀 통틀어 최고 액수를 받았잖아요. 기쁜 건 잠시였고 부담이 100만 배는 더 커졌어요. 아무리 돈을 많이 받아도 팀 성적이나 개인 기록이 좋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잖아요. 열심히 재활해서 몸값, 밥값을 해야 되겠죠?”
남자 친구가 없다는 한송이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다고 한다. 186㎝의 키로 인해 수준에 맞는 남자 친구를 만나기 쉽지 않지만 최근 남자의 키를 대폭 낮췄다는 후문. 180~185㎝로. 한송이의 이상형은 <웃찾사>에서 ‘웅이 아버지’로 활약 중인 개그맨 이용진이라고 한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