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겨울 팀 해체의 굴곡을 벗어나 올 시즌 타격 공동 1위에 오른 전준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민훈기(민):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타격 공동 1위에 올랐는데 체력적으로도 손색이 없나보다.
전준호(전): 외모는 말라보이지만 체력은 좋은 편이다. 도루를 그만큼 하고 풀타임으로 뛰어 온 것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민: 18년 연속 두 자리 숫자의 도루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538개 도루면 600개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전: 해낼 것이다. 올해도 6개를 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꼭 10개를 채우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많은 도루를 할 것이다. 도루 600개는 후배들을 위한 목표치다. 내가 그 기록을 세워 놓으면 후배들이 기록을 깨려고 도전하지 않겠나.
민: 야구를 하면서 도루에 큰 의미를 두게 된 이유는 뭔가.
전: 좋은 코치를 만났던 덕분이다. 롯데 시절 조 알바레스 코치님이 내 야구 인생에 큰 변화를 주는, 공격적인 베이스 러닝에 대한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 분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고, 오늘날 500도루를 이루게 된 힘이었다. 그 전엔 시즌 20~30개의 도루를 했는데 그 분을 만나면서 70개의 도루도 하게 됐다.
민: 당시 이종범 같은 좋은 경쟁자가 있었던 것도 힘이 됐을 텐데.
전: 아, 맞다. 훌륭한 라이벌은 자기 자신도 성숙하고 발전시키게 만든다. 좋은 라이벌이 있었던 것이 도루 경쟁에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이종범 선수가 일본도 갔다 오고 어려운 시절도 겪었지만 90년대 중반에는 정말 도루 부문에서 나의 대단한 라이벌이었다.
민: 100미터 기록은 얼마인가.
전: 11초8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안 나온다(웃음).
민: 어려서는 투수로 활약하다가 타자로 전향한 이유는 뭔가.
전: 고등학교 때까지는 투수를 병행했는데 어려서부터 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영남대부터 완전히 타자로 전향했다. 치고, 도루도 하고, 외야에서 뛰고 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민: 오래 야구를 하면서 고비도 많았겠지만 작년 겨울이 몹시 힘들었을 텐데.
전: 아, 힘들었다. 이젠 과거지만 진통이었고 모두가 힘든 과정을 겪었다. 후배들이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었지만 낙오자 없이 모두 한자리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그러나 스프링 트레이닝 훈련을 잘 하지 못한 것은 선수들 각자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할 것 같다.
민: 연봉 삭감 등 여러 사태가 억울하고 황당하지 않았나.
전: 사실 2~3년 전부터 예측은 했다. 막상 팀이 해체되니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는 해왔었다. 이런 시련이 왜 내게, 우리 팀에 오는가 생각을 왜 안 해봤겠나. 그러나 야구 선수로서 가는 길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내 의사에 따라 되는 것도 아니고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보다 더 좋아하는 야구를 하니까 만족한다.
민: 도루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 눈이 좋아야 한다. 도루는 발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다. 투수의 동작을 잘 캐치해야 한다. 투수마다 특유의 습관들이 있다. 오른쪽 투수 같은 경우 왼쪽 다리, 무릎, 어깨, 머리, 골반 등도 본다.
민: 그게 다 보이나.
전: 보면 보인다(웃음).
민: 도루하기에 까다로운 투수가 있나.
전: LG 봉중근 선수, 정말 약점이 없다. 깜짝 놀랐다. 5월에 봉중근 상대로 1루에 나갔다가 도루 의도가 없었는데도 송구에 잡힐 뻔했다. 세 가지의 견제 동작이 모두 완벽했다. 습관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다.
민: 가족들의 걱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전: 물론 걱정을 많이 한다. 도루 많이 할 때는 한 게임에 서너 개씩 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옷을 벗으면 무릎, 팔꿈치 등등 온몸이 흉터다. 그러나 ‘전준호가 도루를 못하면 야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젠 와이프도 이해를 하고 응원을 해준다.
민: 번트 안타가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전: 요즘은 번트 안타로 재미를 못보고 있다(웃음). 2~3년 전까지만 해도 쏠쏠히 재미를 봤는데 요즘은 수비들이 내 번트에 대비해 시프트를 한다. 그래서 정확히 번트를 대도 죽는다. 그래서 변화를 주려고 한다. 연구를 하고 있다.
민: 얼마나 더 현역으로 뛰고 싶은가.
전: 후배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성적을 못 낸다고 느낄 때는 미련 없이 그만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명감을 갖고 하고 있다. 아직은 (그만둘 때는) 아닌 것 같다.
민: 그렇게 오래 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전: 특별한 비결이 있겠나. 자기 관리를 잘하고 잘 쉬고 그리고 본인을 자꾸 채찍질해야 한다. 3할 치는 선수가 그것을 유지하려고 생각하면 곧바로 2할대로 떨어진다. 3할을 치면 3할1푼을 목표로 뛰어야 한다. 목표를 정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말투는 조용하고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이 펄펄 넘쳤다. 마흔 살이 돼서도 여전히 현역 선수로 뛰고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여전히 많은 목표들을 세워놓고 그것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최근 2000번째 경기에 출전했고, 곧 2000안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600도루도 이룰 가능성이 있다. 전준호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한 모양이다.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