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맷집’ 박종호. | ||
그런데 다소 ‘엉뚱한’ 기록들도 있다. 엄청난 대기록이라고 얘기하기엔 뭔가 적당하지 않은 듯 보이고, 그렇다고 절대 무시할 수도 없는 기록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몸에 맞는 볼, 즉 사구다(모든 기록은 6월18일 현재 기준).
▶▶ 이대호 “나 좀 때리지 마”
롯데 이대호는 6월 18일 현재 8개 구단 타자 가운데 가장 많은 10개의 사구를 맞았다. 체구가 워낙 크다보니 맞을 곳이 많아서일까. 그보다는 롯데 중심타자로서 상대 투수들의 견제를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급기야 이대호는 얼마 전 두산과의 경기 때 두산 김경문 감독을 찾아가 “저 좀 맞히지 말라고 투수들에게 얘기해주세요”라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물론 농담 삼아 투정을 부린 것이었다. 실제 정색하고 상대편 감독에게 이 같은 주문을 할 만큼 간 큰 선수는 없다. 공교롭게도 그날 경기에서 이대호는 첫 타석에서 두산 선발 이혜천에게 사구를 얻어맞았다. 제구력이 들쭉날쭉하기로 유명한 이혜천이 공을 뿌리다 손에서 빠졌기 때문이었다.
▲ ‘최악의 1타 2피’ 채상병. | ||
통산 기록에선 감히 범접을 허락지 않는 선수가 한 명 있다. 삼성 스위치히터 박종호는 개인통산 160개의 사구를 기록 중이다. 92년 프로에 데뷔한 뒤 1477경기를 뛰는 동안에 160차례나 투수가 던진 공에 두들겨 맞았다. 9.2경기에 한 번꼴로 사구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33경기에서 아직 한 번도 공에 맞지 않았으니 신기한 일이다. 박종호 정도 되면 맞는데 이골이 나지 않았을까. 전혀 아니다. 선수들은 “한번 맞아보지 않으면 사구가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제대로 ‘쩍’하고 맞으면 야구공 실밥 자국대로 멍이 든다고 보면 된다”면서 과장 섞인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 투수도 울고 싶다
타자가 한 대 맞을 때마다 투수에게도 사구 기록이 한 개씩 추가된다. 투수에게 사구는 분명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다. 제구력이 좋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주자 한 명을 내보내는 것이니 달갑지 않은 기록이기도 하다. 6월 18일 현재 두산 이혜천과 KIA 임준혁, LG 정찬헌 등 3명이 8개의 사구로 최다 투수들이다. LG는 신인투수인 정찬헌이 두드러진다. 신인치고는 과감한 몸쪽 승부를 많이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맞히지 않고 몸쪽 승부를 하는 제구력을 더 가다듬어야함은 물론이다.
개인통산 최다 사구 기록은 현역 코치가 갖고 있다. KIA 이강철 투수코치가 현역 시절 198개의 사구를 기록했다. 오른손 언더핸드스로 특유의 오른손 타자 몸쪽을 파고드는 슈트성 패스트볼로 현역 시절 톡톡히 재미를 본 이 코치는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타자를 맞히는 일 또한 많았다. 10년 연속 10승 이상이란 대기록을 세운 투수인 이강철 코치에게도 감추고 싶은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타자들은 “언더핸드스로 투수의 공은 구속이 느리고 주로 하체에 맞기 때문에 그나마 덜 아픈 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영광의 상처’ 송진우. | ||
▶▶ ‘회장님’도 못 피한 대포
사구 비율은 굉장히 낮았지만, 대신 송진우는 통산 피홈런 부문에선 260개로 단연 선두다. 만 42세 나이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프로야구 역대 최다이닝(2932⅓이닝)을 던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떠안게 된 영광의 상처인 셈이다. 송진우의 뒤를 따르고 있는 현역 투수는 SK 김원형(219개), 삼성 이상목(203개), 한화 정민철(199개) 등이다. 추세를 봤을 때 ‘회장님’을 추월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송진우는 통산 2635안타를 허용해 이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1등이다. 물론 오랜 기간 누적된 수치라서 1등일 뿐이다. 그의 통산 이닝과 비교해보면 절대적으로 좋은 수치라고 봐야 한다.
▶▶ 차라리 삼진을 달라
타자 최고의 불명예는 삼진이 아니다. 삼진 당하면 아웃카운트 한 개만 늘어난다. 병살타를 칠 경우엔 아웃카운트 두 개를 헌납하게 되고, 소속팀 더그아웃에 찬물을 쫙 끼얹는 이적행위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몇몇 타자들은 “박빙 승부 때 1사 1, 2루 같은 상황에서 영 자신이 없을 때에는 일부러 헛스윙 세 번하고 삼진 먹고 들어올 때도 솔직히 있었다”고 고백한다. 열성적인 프로야구 팬들은 응원하는 팀의 타자들에게 “제발 혼자 죽어라”하고 병살타 방지를 주문하기도 한다.
6월 18일 현재 8개 구단 선수 중 두산 채상병이 11개의 병살타로 최다를 달린다. 아웃카운트 22개를 혼자 처분한 것이다. 올시즌 지명타자로 변신한 홍성흔의 뒤를 이어 베어스 안방을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채상병은 병살타 얘기만 나오면 주눅들 만도 하다.
팀별로는 삼성이 병살타 61개로 최다인 상황. LG가 41개의 병살타로 가장 적다. 그렇다고 해서 LG 타자들이 주자 있을 때 잘 쳤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LG 타자들은 8개 구단 가운데 최다인 397개의 삼진을 당했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