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무 감독. | ||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에 도전하는 태극호의 앞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경고가 나오는데도 대한축구협회는 크게 신경 안 쓴다. 오히려 괜히 흔들지 말라며 얼굴을 붉힌다.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경기력 논란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고 선을 그은 뒤 “최종예선에 오른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명한 결과물’이 있는데 웬 비판이냐는 말이다.
다른 축구협회 고위관계자도 마찬가지다. “승수가 적어서 말이 나온 게 아니냐. 3승3무지만 조 1위로 3차 예선을 끝냈다. 한국축구가 위기에 빠졌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드컵 본선행 위기?
그러나 무사태평인 축구협회와 달리 선수들은 긴장한다. 지난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3차 예선 남-북전이 끝난 뒤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던 김두현(웨스트브로미치)은 “최종예선에선 우리의 장점을 강화해 경기 운영 능력을 더 보완하겠다. 이 상태로 간다면 월드컵 본선행을 장담할 수 없다. 긴장감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주장으로 뛰었던 안정환(부산아이파크)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대표팀의 보완점에 대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라는 의미 있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대표팀 해산 후 인터뷰에 응한 한 선수는 태극호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진단했다. 이 선수는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대표팀의 공격과 수비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골 결정력을 높이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PK로 골을 뽑아냈고 필드 골은 많지 않았다. 최종예선에서 만날 팀들은 요르단이나 투르크메니스탄보다 강한 팀들인데 걱정이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도 문제다. 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3-1로 이기긴 했어도 상대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실점해서는 안됐다.”
▲ 6월 22일 남과 북이 겨룬 월드컵 3차 예선전. 결과는 무승부로 끝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경기에 앞서 상대팀 비디오 보고, 우리 비디오 보고, 훈련하면 끝이다. 특별한 지시는 없다. 요르단 및 투르크메니스탄 원정, 북한 홈경기를 치르면서 특별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 그냥 똑같은 전술로 나선 것 같다. 이대로 간다면 최종예선은 힘들지 않을까. 한국이니까 어떻게든 월드컵 본선에는 오를 것 같기도 한데 문제가 많을 것이다.”
상당수 축구전문가가 실망한 허 감독의 전술 구사 능력에 선수도 비슷한 의견을 낸 것이다. 이 선수는 허 감독의 훈련방식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놓았다.
“요르단전이 끝나고 터키에 가자마자 훈련했는데 토할 뻔했다. 3시간 비행해서 갔는데 운동장 10바퀴 조깅하고 경기 안 뛴 선수들은 패스게임 경기하고 슈팅게임하고, 도착하자마자 너무 힘들게 훈련해서 죽는 줄 알았다. 전남에서도 체력훈련 강하게 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비행기 타고 3시간 이동한 날 그렇게 훈련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가감 없이 이야기하던 이 선수는 대표팀의 분위기와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생각도 전했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좀 문제가 있지만 대표팀 분위기나 생활 같은 경기 외적인 부분은 외국인 감독 시절과 다를 게 없다. 선수들 모두 잘 지낸다. 아직 ‘감독이 별로’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허 감독의 훈련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쪽이지만 몇몇 선수는 허 감독에 대한 비판여론을 접하면서 ‘좀 더 지켜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의견을 내놓는다.”
▲ 김두현(왼쪽), 안정환. | ||
폭스스포츠는 태극호의 현주소를 진단하면서 한 한국인 기자의 비유를 빌려 한국축구를 ‘변비에 걸린 아주머니’라고 비꼬았다. 뭔가 답답해 보인다는 것이다. 존 듀어든은 네덜란드와의 유로2008 8강전에서 승리한 러시아와 북한과의 남아공월드컵 3차 예선 6차전에서 무승부를 거둔 한국의 경기내용을 번갈아 본 한국 축구팬은 잘생긴 새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옛날 여자친구와 꾀죄죄한 지금의 여자친구를 비교하는 기분일 것이라는 ‘뼈있는 농담’을 했다. 아울러 “현재 한국대표팀에는 히딩크의 유산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전임자(거스 히딩크 감독)에 비해 후임자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대놓고 말한 것이다.
조1위로 3차 예선을 통과했음에도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국내외 언론의 매정한 비판과 차가운 여론에 허정무 감독과 코치들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 태극호를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도 무능력하다는 비판을 받은 끝에 한국을 떠나야 했던 조 본프레레 감독처럼 억울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판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광화문 네거리를 인파로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 전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국민스포츠가 축구이기에 수많은 축구팬과 언론이 가혹할 만큼 엄격한 잣대로 코칭스태프의 지도력과 대표팀 성적을 측정하는 것이다.
축구협회와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축구팬과 언론의 아우성을 괜한 시비로 생각하지 말고 한국축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쓴 보약으로 여겨야 한다.
전광열 스포츠칸 축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