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비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US여자오픈 최종일 16번홀에서 드라이브 샷을 날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악재가 호재로, 갤러리 부상 사건
박인비는 US여자오픈이 열리기 1주전 웨그먼스LPGA챔피언십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권을 달리다 마지막 날 74타로 무너지며 6위에 그쳤다. 미국 주니어무대에서는 최강의 실력을 뽐냈던 그가 2007년 프로 데뷔 후 유난히 마지막 날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이번만큼은 우승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사고’ 때문에 징크스는 오히려 더 커져버렸다. 박인비가 친 드라이브샷 볼이 그만 갤러리로 나온 미국 중년여성의 입 부위에 맞았던 것. 이 갤러리는 치아가 부러질 정도로 크게 다쳤고, 대회 도중 코스에서 자신이 원인이 돼 갤러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을 본 박인비는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치료비는 미LPGA 사무국과 대회주최 측이 부담했지만 박인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성스레 사과의 편지를 쓰고 3000달러를 동봉해 피해자에게 보냈다. 그런데 이 중년팬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몸 상태는 치료를 잘 받아 괜찮고, 오히려 앞으로 박인비의 열렬팬(Big Fan)이 되겠다고 했다. 여기에 박인비는 위로를 받았다.
최고의 대회를 앞두고 주위에서는 어린 선수가 큰 충격받았다며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박인비는 뒷심 부족 징크스를 날려버리고 생애 첫 우승을 최고의 대회에서 만들어냈다.
‘IB 박’이 IB스포츠로 - 운명의 계약
박인비의 부친 박건규 씨(46)는 올 초 <일요신문> 미LPGA 통신원인 송영군 씨 등을 통해 매니지먼트사 물색을 부탁했다. 박인비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차피 미국에서 뛰고 있는데 한국기업의 마크를 달고 싶다”고 밝혀왔다.
박 씨는 지난 4월 지인을 통해 국내 스포츠매니지먼트사로는 유일하게 코스피에 상장돼 있는 IB스포츠의 문을 노크했다. 미LGPA 랭킹 15위 안에 드는 유망한 선수지만 ‘계약금도 필요 없으니 우리 딸을 잘 보살펴 달라’는 게 유일한 조건이었다. 파격적인 내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IB스포츠는 응답이 없었다.
US오픈 1라운드 후 국내 사업문제로 6월 27일 귀국한 박 씨는 다시 IB스포츠를 찾았다. 박인비와 아내 김성자 씨로부터 “이번에 한국에 가면 어떻게 해서든 매니지먼트 문제를 해결하라”는 숙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했기에 휴일인 6월 30일(일요일) 저녁 IB스포츠를 직접 찾아가 담당자를 만났다. 알고보니 IB스포츠는 박인비 영입을 무척 원하고 있었지만 내부의 보고체계 문제로 일이 진척이 되지 않았다. 박건규 씨와 IB스포츠의 김명구 골프담당 국장은 즉석에서 계약에 합의했다. 말 그대로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기 직전인 불과 10여 시간 만에 박인비는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만약 IB스포츠가 박인비의 우승 이후 계약을 했다면 솔직히 거액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김명구 국장은 “우승을 했음에도 전혀 변화가 없는 박인비 선수의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계약금이 없는 당초 계약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박인비 선수가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건규 씨도 “무슨 소설 같다. (박)인비가 미국에서 IB PARK이나 I PARK를 이름으로 쓰는데 어쩌면 정해진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진심으로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IB는 우승 직후 발 빠르게 움직여 박인비가 원했던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 하나와 스폰서계약을 이미 체결했다.
핑크색이 싫은 이유 알고보니
폴라 크리머(22)와 박인비는 두 살 차이가 나지만 미국 주니어무대에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번갈아 가며 ‘올해의 선수’를 나눠가졌다. 크리머는 박인비보다 2년 먼저 프로로 뛰어들어 일찌감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미국의 간판선수로 성장했다. 중학시절부터 미국에서 생활한 박인비는 동양인에 대한 은근한 차별을 직접 겪다 보니 유난히 크리머에게는 승부욕이 강했다. 핑크색을 좋아해 ‘핑크공주’로 불리는 크리머를 의식해서인지 박인비는 웬만해서는 핑크색 옷을 입지 않았고, 옷이나 캐디백, 클럽 등 크리머가 애용하는 스타일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이번 US오픈에서 3라운드까지 크리머는 한 타 차 2위, 박인비는 크리머에게 한 타 뒤진 3위였다. 크리머가 챔피언조(맨 마지막조)로, 박인비는 하나 앞선 조로 마지막 날 경기를 펼친 것이다. 가장 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크리머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기에 박인비는 생애 첫 승의 기쁨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저 뼈 속까지 한국사람이에요”
“2004년 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 때일 겁니다. 32강에서 인비와 미셸 위가 맞붙어 인비가 이겼죠. 그런데 한국신문에 이런 식으로 보도가 났어요. ‘미셸 위, 박인비에게 아쉽게 역전패’. 정말 속상했죠. 특히 인비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미셸 위는 미국국적이고, 인비가 한국국적인데 말이죠.”
박건규 씨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했다. 미셸 위가 상품성이 좋아도 좀 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인비는 미국 아마추어 무대에서 미셸 위와 맞붙어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번 우승 전까지 박인비를 아는 한국 팬들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도 생년월일이 잘못 나와 있다. 7월 12일 생인데 7월 23일로 나온 것이다.
프로데뷔 후 박인비의 소원은 LPGA에서 우승한 후 생일잔치를 한국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초에는 귀국 일정이 없었지만 박인비는 8일 귀국해 각종 환영이벤트에 참석한 후 12일 분당 집 근처에서 서현초등학교 동기들과 신나는 생일파티를 할 예정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