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발투수였던 LA 다저스 박찬호가 올시즌 구원투수로 보직이 변경됐지만 2점 대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불꽃 투구를 선보이고 있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투수들은 등판하고 나면 어깨에 얼음봉지를 대고 압박 붕대로 감아놓는다. 그런데 그날 박찬호는 어깨를 압박 붕대로 감은 것은 물론이고 허리와 허벅지까지 세 군데에 얼음 팩을 댄 후에 압박 붕대로 감고 뒤뚱거리면서 클럽하우스로 들어섰다.
그날 박찬호는 불펜에서 몸을 풀다가 결국 등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날과 전전날(2, 3일) 15년 빅리그 생활 동안 처음으로 이틀 연속으로 등판했었다. 그리고 4일에는 등판은 안했지만 불펜에서 계속 공을 던지며 준비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3일 연속 등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경기가 끝나고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한 후에도 근육이 뭉친 곳에 그렇게 얼음찜질을 한 것이다. 젊었을 때는 어깨에만 아이싱을 했었는데 언제부턴지 그 부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구원 투수로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박찬호를 직접 만나 다저스에서 보내는 그의 야구 인생을 들여다봤다.
만으로 서른다섯의 나이에 1년간의 공백을 딛고 재기한 박찬호는 원래 선발 투수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56 경기를 던졌는데 그 중에 280번이 선발이었다. 그나마 올 시즌 27번이나 구원 등판한 것을 빼면 90년대 중반 초년병 시절 이후로는 구원 투수로 뛴 적이 거의 없다.
선발 투수와 구원 투수는 똑같은 투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축구로 치면 최전방 스트라이커와 최후방의 리베로만큼이나 다른 성격의 보직이다. 아예 훈련 자체도 다르고 준비하는 과정은 천지 차이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 역시 다르다.
선발 투수는 5일에 한 번 등판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해진 틀 안에서 계획대로 운동과 러닝과 휴식을 반복하면 된다. 그러나 구원 투수는 매일 대기해야 하므로 운동량은 적지만 불규칙하고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아예 구원 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면 모를까 중간에 선발에서 구원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선발 투수였던 박찬호는 다른 구원 투수들보다 몸을 푸는 데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박찬호는 “불펜에서 몸을 푸는 데만 공을 50~60개는 던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일단 몸을 풀라는 지시를 받으면 비록 등판을 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의 부하가 걸린다는 뜻이다.
4일 경기에서도 박찬호는 7회에 이미 외야 불펜의 마운드에 올라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8회까지 계속 공을 던지면 몸을 풀었다. 앞서 나간 쿼홍치가 한 타자라도 내보내면 박찬호는 곧바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쿼홍치가 1.1이닝을 틀어막고 내려가자 박찬호는 몸만 풀고 경기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박찬호는 그날 그렇게 온몸에 아이싱을 한 이유에 대해 “자주 등판하고 불펜에서 몸을 계속 풀다보니 온 몸이 여기 저기 쑤시고 근육이 뭉치고 하는데 이젠 나이를 먹어서인지 쉽게 풀리지도 않는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 조금은 공허한 웃음 속에는 구원 투수로 재기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운동을 덜 한다는 것이 의문스러워 다시 물었더니 “하고 싶어도 못한다. 매일 등판 준비를 해야 하니까. 선발은 러닝 하는 날, 웨이트 트레이닝 하는 날, 공 던지는 날, 그렇게 딱 패턴을 가지고 가니까 운동을 많이 하는데 구원은 그렇지 않다. 또 심란하기도 하다”라며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만큼 박찬호는 아직도 구원보다는 선발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팀 내 사정을 보면 박찬호의 선발 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다저스는 데릭 로-채드 빌링슬리-구로다-클레이턴 커쇼-제이슨 존슨으로 선발진을 꾸려가고 있다. 그 중에 커쇼는 신인이고 존슨은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왔다.
그렇지만 조만간 에이스 브래드 페니가 부상에서 복귀하고 연봉 1500만 달러가 넘는 제이슨 슈미트도 계속 재활 등판을 하면서 선발 재진입을 노리고 있다. 그러니 박찬호가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올 시즌에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박찬호는 구원 투수를 하면서 얻는 점도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는 “불펜을 하면 더욱 집중해야 하고 특히 셋업맨의 자리는 더욱 집중하고 긴장도 되고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체력적으로는 선발이 더 힘들지만 불펜은 정신적으로 힘든데 그래도 불펜에서 한 타자 한 타자 계속 집중하다보니 오히려 선발할 때 도움도 된다”고 말했다.
박찬호의 올 시즌은 조 토리 감독 덕분에 너무 불규칙하다. 선발이 일찍 무너지는 경기에 롱맨으로 패전 처리 비슷하게 시즌을 시작했다가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선발로도 5게임에 등판했고 후반기에는 마무리 사이토가 어깨 통증에 시달리면서 박찬호에겐 셋업맨의 자리가 주어졌다.
박빙의 리드를 하는 경기에서 7회나 8회에 나와 점수를 지켜야 하는 부담스런 자리다. 게다가 토리 감독은 급하면 박찬호를 마무리 투수로도 기용하겠다는 의도다. 실제로 박찬호는 지난 3일 경기에서 마무리로 나와 세이브를 기록했다.
다저스가 세인트루이스 원정에 나선 가운데 박찬호는 6일 다시 구원 등판해 알버트 푸홀스에게 홈런을 맞으며 1실점했다. 최근 3경기에서 홈런을 두개나 맞았다. 특정 부위에 부상이나 심각한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전반적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혹사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올 시즌 박찬호는 6일까지 32게임에 나와 72.1이닝을 던지면서 5승3패 2세이브에 2.74의 좋은 평균자책점을 보이고 있다. 이닝 수가 많지는 않지만 생소한 보직에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 그리고 작년에 빅리그에서 거의 뛰지 않았다가 재기했다는 점 등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최근 거포 매니 라미레스를 영입하면서 다저스는 전력이 급상승해 NL 서부조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제치고 우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구원 투수진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고, 토리 감독은 박찬호를 자주 고비에서 기용할 것으로 보인다. 원하던 선발 자리는 일단 요원해졌지만 박찬호의 입장에서는 부상 없이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마치고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입장이다.
메이저리그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