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호가 유도 남자 60kg급 결승에서 오스트리아 루드비히 파이셔를 한판으로 물리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장면 하나. 2004년 아테네에서 동메달을 딴 후 최민호를 코리아하우스에서 인터뷰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에 쥐가 나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쥐가 난 원인도 너무 훈련을 많이 해 땀이 지나치게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다섯 판을 모두 한판승으로 장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신드롬에 가려 최민호는 쉽게 잊혀졌다.
장면 둘. 2005년 8월 13일 최민호는 미니홈피에 이런 심경을 토로했다. ‘난 항상 세계 최고를 꿈 꿨다~~ 이 시점(에서) 모두들 이젠 끝이라 한다. 난 강하다. 난 다시 세계 최고를 향해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세상 제일 높은 곳에 태극기를 걸겠다. 난 세계 최고다. 난 최민호~!’
그해 9월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최민호는 국가대표팀 선발전 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모두들 이젠 끝이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런 좌절의 순간에서도 최민호는 스스로 각오를 다지며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면 셋. 2006년 3월 12일 절망의 끝에서 최민호는 거의 절규하다시피 했다.
‘세상아~ 넌 날 정말 잘못 봤다~~. 정말 날 우습게 봤구나. 나 그렇게 쉽게 물러나는 놈 아니다. 이 세상아 너두 정말 만만치 않은 놈이구나. 그래 인정한다. 하지만 날 우습게 보지마라. 정말 후회할 것이다. 난 다시 세계정상에 선다~. 우습게 보지마라. 난 수사불패! 정말 죽을 순 있어도 질 순 없다.’
어깨부상으로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인 데다 2006도하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최민호는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다짐을 한 것이다.
장면 넷.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둔 2008년 7월 24일. 최민호는 그간 얼마나 지독한 훈련을 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글을 남겼다.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 정말 힘들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하루하루 눈물로 보냈다. 그 눈물아! 나에겐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후회 없이 운동했다. 세상이 놀랄 일이 일어날 것이다.’
5판 모두 한판승. 5경기에 걸린 시간은 고작 7분40초. ‘딱지치기(다리들어메치기)’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베이징에서 ‘새로운 한판승의 달인’으로 거듭난 최민호의 경이적인 성적이다. 너무도 부러워 소주를 일곱 병이나 마시며 속을 달랬다는 이원희(1년 후배)를 능가하는 수치다. 결국 최민호의 7월 다짐은 자신감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었다. 목숨을 건 훈련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장면 다섯(마지막). 최민호는 금메달을 딴 후 베이징 프라임호텔에 위치한 코리아하우스에서 4년 만에 다시 인터뷰를 가졌다.
“운동하는 게 너무 좋았고 지쳐 쓰러져도 행복했다. 아테네올림픽 준비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고통에 겨운 나 자신을 뛰어넘지는 못했다.이번은 죽을 고통을 안겨준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보람을 찾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훈련 그 자체가 행복의 연속이었다.”
그토록 괴롭혔던 훈련을 이제는 ‘행복’이라고 묘사한 것이다. 우승확정 후 30분이 넘도록 눈물을 쏟아내 ‘소심남’으로 불린 것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운 적이 많았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 하나님께 ‘제가 이렇게 버틸 줄 몰랐죠.저를 보고 놀라셨죠’라며 기도했다.이런 모든 과정이 짧은 순간에 모두 응축돼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답했다.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 중국 후한 시대의 경엄은 원래 선비였는데 늠름한 무관들의 모습을 본 후 자신도 장차 대장군이 되어 공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장수가 된 경엄은 나중에 다리에 화살을 맞고도 불굴의 의지로 적군을 물리칠 정도로 큰 공을 세웠다. ‘뜻을 세우고 중간에 포기하는 일없이 계속 밀고 나가면 반드시 성공을 이룬다’는 이 고사성어의 21세기 버전을 최민호가 만들어낸 것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