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이후 무려 10번째 태극마크. 김동주는 소속팀 감독인 김경문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동주야, 네가 안가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간절히 자신을 바라는 감독의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내를 놔두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난 3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도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중도 귀국했던 김동주. 게다가 본인의 팔꿈치 상태도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동주는 나라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대회를 준비했다.
김동주는 올림픽 6경기에서 17타수 5안타로 타율 2할9푼4리를 기록했다. 예선에서 장딴지 부상을 당하며 3경기 연속 결장한 김동주였지만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고통을 참고 5번타자 겸 3루수로 자리를 지켰다.
김동주는 우승을 차지한 후 취재진과 만나 “아내와의 약속을 지켜서 기쁘다.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던 아내가 흔쾌히 ‘갔다 오라’고 격려를 해줬다. 대신 꼭 금메달을 따오라는 부탁을 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킨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