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달려놓고 아직도 더 뛸 게 남았다는 말인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서른아홉에 39번째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28위)한 이봉주가 은퇴를 미뤘다. 사실 그가 뛰고 싶다고 하면 말릴 이유도 없다. 소속팀 삼성전자육상단도 이봉주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할 예정이다. 결국 불혹의 나이(마흔)까지 이봉주는 달리게 됐다.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국민 마라토너의 거취’를 <일요신문>이 꼼꼼히 살펴봤다.
이봉주는 올림픽 폐막식 다음날인 지난 8월 25일 귀국했다. 이후 청와대 행사에 참석했고, 소속사 삼성전자 고위층에 인사를 다녔다. 그리고 휴가를 떠나 9월 8일 경기도 기흥에 위치한 삼성전자육상단으로 복귀한다.
이봉주가 현재까지 은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한 말은 8월 24일 베이징올림픽 마라톤 직후 “귀국 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가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직 공식적으로는 은퇴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는 당연히 현역선수로 올림픽 후 휴가를 즐기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오인환 삼성전자육상단 감독은 “워낙 큰 경기를 준비해 온 까닭에 베이징올림픽 이전에 은퇴 후 계획에 대해 팀 내부적으로 어떤 논의가 없었다. 단 이봉주 선수가 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내게 ‘좀 더 뛰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이봉주도 올림픽 직전 <일요신문>의 다롄 동행취재 때 “은퇴 경기를 꼭 하고 싶다. 그냥 은퇴식을 겸한 그저 그런 형식상의 레이스가 아닌 최상의 몸 상태에서 좋은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하는 마지막 경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봉주는 지난 4일,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단 9월 8일 팀으로 복귀한 후 공식발표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현 시점에서 훈련을 중단하고 은퇴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봉주의 은퇴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은퇴경기에서 42.195km를 완주한 직후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것이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달린다’인 셈이다.
그럼 은퇴 후 이봉주는 어떤 삶을 계획하고 있을까. “원래 내가 농부의 아들이다. 예전에는 강원도의 한적한 시골에서 목장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뭐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최근에는 좋은 마라톤 지도자가 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봉주는 강원도 횡계에 목장 부지로 조그만 땅을마련해놨다. 하지만 이제는 목장과는 별도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한 것이다.
▲ 이봉주는 “최상의 몸 상태에서 좋은 기록으로 풀코스 완주하는 마지막 경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 ||
삼성전자육상단의 조덕호 사무국장은 “이봉주 선수는 2000년 창단멤버로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당시 무적 선수였던 이봉주 선수를 구하기 위해 삼성전자육상단이 창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이봉주 선수는 올림픽 3회 출전을 비롯해, 보스턴마라톤 우승, 아시안게임 2연패 등 삼성의 간판선수로 공헌이 아주 크다. 겸손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인해 그룹 고위층들도 그를 아주 좋아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만큼 현역에서 은퇴하더라도 삼성이 이봉주를 안고 간다는 원칙은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지도자 이봉주’는 어떨까. 사실 예전에는 말수가 적고,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는 이봉주는 지도자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오랜 선수생활을 거치며 이봉주는 많이 변했다. 워낙에 독서를 좋아해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먼저 지도자가 된 선후배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보면서 식견도 크게 넓어졌다. 이제 누구 못지않게 좋은 지도자 자질을 갖춘 것이다.
참고로 삼성전자육상단은 이봉주와 2008년까지 선수계약을 맺었다. 사실상 이번 올림픽으로 선수계약은 만료되는 셈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재계약이 필요하다. 조 사무국장은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는 까닭에 뭐 계약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선수계약을 맺고, 은퇴시점에서 지도자로 발령을 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봉주의 은퇴경기 시점은 2009년이 유력하다. 올해는 물리적으로 여유가 없다. 가을에 전국체전, 중앙 서울마라톤, 춘천마라톤 등이 있고, 겨울에는 쌀쌀한 날씨로 인해 옥외행사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마라톤이 열리는 2009년 봄이나,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없는 2009년 가을이 국민 마라토너의 은퇴경기 시기로 적합하다,
훈련이 잘되고, 몸 상태가 좋을 경우에는 은퇴경기를 다소 늦춤과 동시에 A급 국제대회에 출전해 자신의 통산 3번째 한국기록경신도 노려볼 수도 있다.
은퇴경기 후 지도자로 변신하는 시기에 대해선 다소 전망이 엇갈린다. 이봉주가 1~2년 정도 외국유학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상 시스템이 잘 갖춰진 일본이나, 친척이 있는 캐나다 등에서 가족과 함께 어학 및 육상이론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운동을 오래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한 까닭에 이는 가족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배들까지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삼성전자육상단의 김용복 코치도 이봉주의 후배다)로 이봉주의 나이가 많은 까닭에 유학을 접고 바로 코치가 될 확률도 높다. 어떤 경우이든 삼성전자는 이봉주의 지도자 데뷔에 삼성마크를 달아줄 계획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