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US아마추어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니 리. 그는 타이거 우즈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6개월여 단축했다. AP/연합 | ||
<일요신문>이 이 씨를 만나 놀라운 ‘머신’ 대니 리의 미래를 들어봤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이미 IMG 등 세계적인 매니지먼트 회사로부터 프리젠테이션까지 받았습니다. 뭐 솔직히 4000만 달러(약 440억원) 계약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이상주 씨는 아주 신중한 편이다. 작은 것을 크게 과장해서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예컨대 언론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촬영 요청도 극구 거절했다). 이진명의 US아마 우승 후 한국의 주요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았지만 이번 한국 방문 때 어느 언론사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왔다. 또 조금만 외국에서 성적이 나면 한국기업의 스폰서십을 알아보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이 씨는 한국 기업의 스폰서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이 구체적인 액수와 기업 이름까지 밝히며 말하는 내용이기에 신뢰가 갔다. 실제로 미국이나 뉴질랜드 언론의 이진명 관련 보도를 찾아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진명은 이번 US아마 우승 이전에 뉴질랜드에서는 사상 최고의 ‘골프신동’으로 유명했다. 2006년 이진명이 이상주 씨의 건강문제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잠시 검토했을 때 뉴질랜드 골프협회와 정부가 영주권 등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붙잡았을 정도다. 실제로 이번 US아마 우승은 뉴질랜드 골프 역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티칭프로였던 어머니 서수진 씨로부터 영향을 받아 골프에 입문한 이진명은 초등학교 시절 국내 톱랭커로 2년 연속 주니어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되기도 했다. 올해 한국과 일본의 아마선수권을 제패한 김비오와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이후 전지훈련을 갔던 뉴질랜드로 둥지를 옮겼고 이후 뉴질랜드 골프계를 석권했다. 각종 주니어대회를 석권한 것은 물론이고 2006년에는 만 16세도 안 된 나이에 아마추어 메이저대회인 ‘뉴질랜드 23세이하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또 이 해 타이거 우즈가 거쳐 간 세계주니어챔피언십(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고, 국내 최고의 대회인 매경오픈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골프위크 선정 세계 아마추어랭킹 1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급성장한 이진명은 2007년부터 미국무대를 노크하기 시작했고, 특히 올해는 US아마우승을 목표로 강행군에 나섰다. 이번 US아마 대회도 웨스턴아마추어선수권대회와 미PGA 투어 윈덤챔피언십을 연속으로 치른 후 3주 연속 출전한 대회였다. 성적도 좋았다. 웨스턴대회에서 우승했고 자신의 첫 PGA 출전인 윈덤챔피언십에서도 316야드의 드라이버샷, 퍼팅 4위 등 아마추어로서는 믿기지 않는 실력을 과시하며 20위에 올랐다. 이번 US아마 우승이 결코 이변이 아닌 것이다.
이러니 미국 골프계가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타이거 우즈는 96년 프로에 데뷔하면서 나이키와 5년간 4000만 달러의 초특급계약을 맺었다(이후 2001년에 5년간 1억 달러, 2006년 계약내용 공개 없이 재계약). 턴 프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진명도 현재 타이거 우즈급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가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이진명은 당초 미국 명문대학 진학과 2009년도 미PGA 퀄리파잉스쿨 도전이라는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US아마 우승자에게는 각종 특권이 주어진다. 12개 프로대회에 초청을 받고, 여기에는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 등 미PGA 메이저대회가 포함돼 있고, 특히 ‘꿈의 무대’로 불리는 마스터스 출전 가능성도 높다(US오픈에서는 전년도 우승자인 타이거 우즈와 한 조로 1, 2라운드를 치른다). 어쨌든 Q스쿨을 거치지 않아도 안정되게 프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상주 씨는 “확실하게 Q스쿨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아마 욕을 먹을 겁니다.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아마추어선수권에 출전한 후 내년 적당한 시점에 턴 프로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타이거 우즈처럼 그 과정에서 프로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이 목표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진명의 미래에 대해 큰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그가 성적이나 실력 외에 타이거 우즈 못지않은 흥행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182cm에 76kg의 좋은 체격인 이진명은 드라이버샷을 쉽게 300야드나 날린다. 그리고 아이언샷은 그야말로 ‘머신’이라는 말처럼 정확하다. 여기에 플레이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동반선수가 샷을 날린 후 20초도 안돼 공을 쳐버린다. 심지어 볼 2개가 동시에 날아가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다. 그러면서도 샷이 정확하니 그야말로 ‘기계’인 셈이다. 이러니 TV중계를 맡은 방송사가 좋아하고, 갤러리가 열광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아마추어 꼬마였지만 매 경기 30~40명의 갤러리가 쫓아다닐 정도였다. 이 씨는 “US아마 결승전 장면이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미국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결승전 상대였던 드류 키틀슨(미국)은 “내가 못한 것이 아니라 대니 리가 너무 잘한 것이다. 마치 타이거 우즈랑 경기하는 것 같았다”고 패배를 인정하기도 했다.
이진명은 이번 9월에 뉴질랜드 시민권을 받았다. 물론 한국 국적도 유지하고 있는 이중국적자다. 한국이 US아마 우승 전까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반면 뉴질랜드는 스포츠대사로 임명하는 등 ‘대니 리’를 잡아두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상주 씨에 따르면 이진명은 주니어시절을 뉴질랜드에서 보냈지만 뼈 속까지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프로선수로 돈을 많이 벌면 꼭 한국에서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진명의 성공시대가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