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부산에서 만난 미 프로야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가 그의 미국생활과 포부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말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에서 성공적인 재활과 복귀를 통해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던 추신수(26) 또한 이번 귀국이 여느 귀국과는 다른 ‘그림들’로 채워질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28일 인천공항에는 추신수를 취재하려는 5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추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카메라들이 추신수와 그의 가족들을 에워쌌다. 그러나 추신수를 바라보는 매스컴의 시선과 팬들의 관심은 뜨겁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워낙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인데다 중심을 잃지 않는 스타일인 탓이다.
2년 전 추신수와 부산 해운대 근처에서 취중토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얼마 전 다시 해운대 회동을 가졌다. 2년 전의 낚지볶음 대신 곱창순대로 안주가 바뀌었을 뿐 소주는 그대로 중심에 자리해 있었다.
늦깎이 신혼여행
추신수의 이번 귀국 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웨딩촬영과 신혼여행이다. 이미 2004년 12월 혼인신고를 마치고 약식 결혼식을 올리며 아내 하원미 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결혼 사진 한 장 없는 걸 아쉬워했던 추신수는 아내를 위해 미국에서부터 여러 가지 준비를 해왔다.
“와이프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았다. 여자는 웨딩드레스 입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아내는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별로 섭섭해 하지 않다가 와이프 친구들이 한두 명씩 결혼을 하고 미니홈피에 사진을 올리자, 와이프가 좀 심란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서든 웨딩촬영은 해주고 싶었다.”
2003년 겨울에 처음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하다가 2004년 하원미 씨가 응원차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한 달 예정으로 떠난 여행은 추신수의 부탁으로 두 달로 미뤄졌고 두 달이 석 달로 이어지면서 결국 하 씨는 미국에 남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혼인 신고로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미국 현지 언론은 추신수의 성적을 얘기할 때 올스타 브레이크 전과 후로 나눠서 설명한다. 추신수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깜짝 놀랄 정도의 활약을 펼치며 고공행진을 펼쳤기 때문이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완전히 달라진 건 사실이다. 가장 큰 차이는 자신감이었다. 야구는 큰 변화가 없다. 단 자신감의 차이가 성적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팔 상태가 100% 회복된 게 아니다보니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공을 잡으면 항상 ‘어떻게 던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야에서 수비를 본다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러다 팔이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송구하는 데 자신감이 붙었고 송구가 자신있어지니까 방망이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있고 없고가 선수 인생을 좌우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지난해 9월 왼쪽 팔꿈치 수술을 받았던 추신수는 힘든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한 끝에 6월 1일 빅리그에 복귀했다. 자신감 부재와 팔꿈치 상태의 더딘 회복으로 추신수 답지 않은 플레이를 펼치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이전의 감각을 되찾게 됐고 연속 안타, 연속 홈런 등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94경기 출장에 타율 0.309, 14홈런 66타점의 성적표를 받아냈다.
“이번엔 경기에 나설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안타 1개 이상은 꼭 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포볼도 한 개 이상은 얻어내려 했다. 이전에는 공을 맞히는 스윙이었다면 올 시즌엔 내 스윙 폼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심판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다. 어떤 공을 좋아하는지, 스트라이크 존을 어떻게 잡아주는지를 파악하고 공부했다. 그런 노력들이 자신감과 함께 성적으로 나타난 것 같다. 수술 후 복귀한 것치곤 좋은 성적이었지만 내년에는 이보다 한 단계는 더 올라서야 한다. 이 정도 성적으론 주전을 꿰차는 게 쉽지 않다.”
나도 도루하고 싶다!
추신수는 빠른 발과 스피드를 자랑한다. 마이너리그에서 708경기를 뛰는 동안 166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올시즌에는 16개의 시도 중 9개만 성공했다. 이유가 뭘까.
“도루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독으로부터 그린 라이트(자신의 판단에 따라 도루를 할 수 있다는 허락)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우리 팀에선 사이즈모 한 명밖에 그린 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출루해서 나가있으면 도루에 대한 강렬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금 뛰면 성공할 것만 같은 때도 있다. 하지만 내 맘대로 했다간 큰 일 난다. 감독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추신수와 가족.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에릭 에지 감독이 플래툰시스템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금 몸 상태에서 계속 내보냈다간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고 판단하시기 때문에 단계를 거쳐서 기회를 주려는 의도다. 감독이 직접 나한테 얘기를 하셨다.”
잊을 수 없는 경기
곱창순대볶음을 맛있게 먹던 추신수가 매운 고추를 베어 물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매운 음식이 땡긴다고 한다. 귀국하기 전 아내와 함께 A4용지 한 장에다 한국 들어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적어봤는데 한 장을 채우고도 넘쳤단다. 그중 첫 번째가 순대볶음이었다고.
적당히 소주를 마시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지난 시즌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무었이었느냐고 묻자, 추신수는 바로 9월 20일 있었던 디트로이트전이라고 대답한다.
“내 생애에 한 경기에서 홈런을 두 번이나 친 적이 없었다. 그것도 3점 홈런을 말이다. 첫 타석에 홈런 치고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 치고, 그러다 팀이 5-2로 뒤진 8회 2사 1-2루 찬스에서 동점 3점 홈런을 뽑아낸 것이다. 와, 진짜 드라마 같았다. 베이스를 도는데 가슴이 벌렁거리며 심하게 뛰어 진정시키기 힘들 정도였다(웃음). 그래도 마지막 홈을 밟을 때는 덤덤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동료 선수들이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더그아웃이 난리가 났으니까.”
추신수는 홈런을 쳐도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 적시타를 치고 홈런을 때리면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좋아하는 선수들 모습에 익숙해 있는 팬들 입장에선 너무나 액션이 없는 추신수의 반응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모르겠다. 월드시리즈도 아니고, 일반 경기에서 홈런 쳤다고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라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안타 치고 홈런 쳤다고 해서 손 들고 좋아하는 건 아마추어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홈런 맞은 상대 투수는 심정이 어떻겠나. 정말 아주 중요한 경기라면 몰라도 일반 경기에선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다.”
추신수의 무심한 대답에 ‘만약 올림픽경기 때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이승엽처럼 홈런을 쳤다면?’이라고 물고 늘어졌다. 그때도 홈런 쳤다고 좋아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추신수는 “내가 손을 들고 좋아하는 건 월드시리즈에서 마지막 끝내기 홈런을 쳤을 때다”라고 거듭 반복했다.
‘두 집’ 살림이 고달프다
추신수는 올시즌 우익수와 좌익수를 가리지 않고 감독의 지시대로 수비에 나섰다. 시즌이 끝날 무렵 추신수는 감독과 단장을 찾아가 내년에도 이런 식으로 포지션을 세울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들의 대답은 스프링캠프에 가봐야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단다.
“아무래도 두 자리를 번갈아 보는 것보다 한 자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음 좋겠다. 지금 상태에선 우익수든 좌익수든 상관없다. 그러나 팀에선 강한 어깨를 필요로 하는 우익수쪽에 날 세울 것 같다.”
▲ 추신수는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 타자 중 최고의 성적인 타율 0.309를 기록했다. | ||
“성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장에 일찍 나가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하면 밤에 잠들 때 후회가 되지 않는다. 평생 야구하는 것도 아니고, 할 때는 후회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 처음엔 구단 직원들이 너무 일찍 나오지 말라고 만류했는데 지금은 미리 (운동장) 문을 열어 놓는다.”
시즌 중에도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기는 마찬가지다. 저녁 7시 경기일 경우 보통 선수들은 4시쯤 경기장에 나오는데 추신수는 12시에 출근한다. 마사지도 받고 라커룸도 정리하고 방망이도 닦아놓으면서 ‘직장 생활’을 준비한다.
“성격이 좀 완벽주의 스타일이다. 목표로 했던 게 있으면 꼭 끝마쳐야 직성이 풀린다. 항상 주변이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돼 있어야 하고 미리 약속한 게 아니면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야구할 때는 이런 성격이 좋은데 사회 생활하는 데 있어선 별로 좋은 성격 같진 않다.”
귀국 후 개인적인 일 때문에 서울에 머문 적이 있었다. 잠실구장에선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렸고 숙소도 잠실 부근의 한 호텔이었다. 때마침 한 야구관계자가 추신수에게 전화를 걸어 잠실구장을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추신수는 미리 약속된 사항이 아니라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못 이기는 척하고 경기장에 나가 양팀 감독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KBO 임원진들에게 눈도장도 찍었겠지만 추신수는 아내와 ‘약속된’ 일정들을 보냈다.
야구인생의 찬스!
추신수에게 내년 시즌에 대해 물으면 눈빛이 갑자기 ‘긴장모드’로 바뀐다. 그만큼 중요한 한 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한국에 나와 있어도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불안하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겠다. 여느 때보다 올해는 한국에서 친구들과의 만남도 최대한 자제했다. 편하게 술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년 시즌이 끝나면 연봉 조정신청 자격을 얻게 된다. 어떻게 시즌을 준비하고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대박’이냐, ‘쪽박’이냐가 갈린다. 지금까지 고생한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부턴 돈을 벌어야 한다. 빨리 캠프가 시작됐으면 좋겠다.”
추신수는 11월 10일 웨딩촬영을 마친 후 11일 발리로 4박5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아들 무빈이는 어머니한테 맡겨두고 아내와 단 둘이서만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야구와 가족’이란 키워드로 가득 채워진 추신수한테선 빈틈이 보이질 않는다. 너무 완벽해서 재미가 없다는 기자의 딴지에 옆에서 얘길 듣고 있던 부산 동의대 조성옥 감독의 아들이자 한때 야구선수였던 조찬희 씨(추신수와 하원미 씨를 연결시켜준 장본인)가 한마디 거든다. “형이 어렸을 때는 싸움대장이었어요. 사고친 게 수두룩했다니까요.” 이에 대해 추신수는 “(이)대호가 싸울 때 가서 도와준 적은 있었죠”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추신수와 이대호는 수영초등학교 동창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