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북한에서 복싱에 입문한 후 7년 만에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최현미. 세계 언론에서도 그를 ‘북한판 밀리언달러베이비’라며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인터뷰는 지난 11월 5일 서울 한남체육관에서 가졌다. 170cm의 큰 키에 늘씬한 체형, 그리고 아주 밝은 성격에 말솜씨까지 뛰어난 최현미는 자신의 18번째 생일이 바로 이틀 뒤라고 소개했다. 아무리 여자복싱이 남자에 비해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18세도 안돼 세계 최고의 복서가 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북한에서 복싱에 입문하고, 남한에서 챔피언이 됐으니 화제가 될 만하다.
최현미는 평양에서 잘나가는 여중생이었다. “평양에 가라오케도 있고, 시설은 뒤지지만 롯데월드 같은 놀이공원도 있어요. 많이 놀러 다녔어요.” 평양 얘기가 나오자 확연히 북한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집안에 대해서는 제법 자부심이 컸다. “엄마는 딸 다섯 중 가운데예요. 이모들이 많은데 대단한 분들이었어요. 첫째 이모는 김일성의 서기였고, 넷째 이모는 북한에서 알아주는 특급요리사였어요. 어려서 잘 모르지만 어째든 평양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살았어요.” 부모가 당원이었냐는 질문에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눈빛과 함께 “그렇다”고 답했다.
최현미는 2004년 2월 가족해외여행을 한다며 북한을 출발해 5개월 동안 중국-베트남-캄보디아-태국을 거쳐 한국에 오는 목숨을 건 탈출 과정을 겪었다. 이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등 일반인들이 겪기 어려운 경험을 한 까닭에 ‘남쪽의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대신 복싱에 전념했다고 한다.
최현미는 지난 10월 11일 전북 진안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중국의 쉬춘옌에게 완벽한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다. 2001년 북한에서 복싱에 입문한 후 7년 만의 일이었다. 최현미는 원래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했는데 어린 아이를 하루 종일 물 속에 담가두는 강훈련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고등중학교 1학년이던 2001년, 학교체육대회에서 최현미는 각종 달리기 경주를 석권했다. 이를 본 타 학교 복싱지도자가 최현미를 스카우트했고, 이후 김철주사범대학의 복싱양성반에 소속돼 기숙사 생활을 하며 스파르타식 복싱훈련을 받았다.
“앞손치기는 잽이고, 곧추치기는 스트레이트죠. 용어는 다르지만 복싱에 대한 기본은 같아요. 북한에서 배운 것이나 한국에 와서 훈련한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워낙 북한에서의 훈련량이 많았던 까닭에 프로 데뷔 이전까지는 북한에서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챔피언에 등극하자 난리가 났다. 10월 27일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이 ‘북한판 밀리언달러베이비’라며 최현미를 크게 보도했고, 이후 프랑스(presse tv) 독일(제1독일공영방송) 일본(니폰tv)의 취재가 계속됐다. 여기에 국내 미디어의 취재가 이어지면서 챔피언이 된 후 거의 매일 인터뷰를 했다.
김한상 관장은 “최현미는 복싱을 떠나 정말이지 끼가 대단하다. 말을 잘하는 것뿐 아니라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한다. 한국은 물론 세계여자복싱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현미는 올해 세계타이틀을 준비하느라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내년에 방어전, 통합타이틀매치 등을 치르고 대학에도 진학할 계획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적인 복서로 우뚝 서는 것이 단기 목표다.
김한상 관장은 “솔직히 진짜 제대로 된 성대결을 한번 펼치고 싶다. 북한 출신으로 화제를 모으는 것을 넘어 정말 실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현재 KBC는 남녀 성대결은 원칙적으로 공식경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성대결은 성사된다 하더라도 이벤트 경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염동균과 박찬희 두 전 세계챔피언이 여자복서와 성대결을 펼친다고 해서 화제가 됐지만 실제 타격이 없는 섀도 스파링에 그친 바 있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써야할 일기가 더 많은 ‘북한판 밀리언달러베이비’ 최현미. 그가 앞으로 몰고 올 복싱바람이 어느 정도로 크게 일지 사뭇 궁금하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