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있었던 이왕표와 밥 샙의 경기에서 이왕표의 발차기 모습. 연합뉴스 | ||
11월 7일 낮 여의도펠리스웨딩홀에서 열린 이왕표-밥 샙 경기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이왕표, 밥 샙, 동영상 등의 단어가 아주 오랫동안 검색순위 1위를 기록했다. 지난 12일 이왕표와 밥 샙이 격돌한 ‘포에버 히어로’ 대회는 과연 ‘짜고 친 고스톱’인가, 함부로 비난하기 어려운 ‘한국프로레슬링의 간판스타’ 이왕표의 역작인가.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뜨겁기만 하다. 그 속내를 들여다 봤다.
# 간판스타와 퇴출스타
이왕표는 한국의 간판 프로레슬러다. 격기도라는 실전무술을 스스로 만들고, 일찍이 울트라FC라는 MMA대회 브랜드까지 만든 바 있지만 확실하게 프로레슬러다. 철저하게 사전 약속된 플레이를 하는 레슬러인 것이다. 물론 이런 프로레슬러라고 해서 운동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국 WWE챔피언 출신의 브록 레스너(최홍만과 일전을 펼치려다 최홍만의 종양이 문제가 돼 경기가 취소된 선수)가 가장 과격한 종합격투기인 UFC에서 선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특히 이왕표는 5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현역으로 활약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반면 밥 샙은 한때 K-1의 톱랭커로 잘나가는 파이터였다. 하지만 최홍만과의 일전에서 패한 후 하락세를 보이며 경기를 앞두고 줄행랑을 치는 등 격투기계에서 ‘겁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후 퇴출되다시피한 선수다. 격투기에서 밥줄이 끊기자 일본프로레슬링으로 무대를 옮겼다.
처음부터 이왕표가 밥 샙과 프로레슬링 경기를 펼친다고 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실전격투기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워크경기(Worked-Shoot, 실전격투기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서로 짜고 싸우는 경기)로 믿어 의심치 않은 경기를 선보였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나 어설펐던 경기
시작은 11월 7일 여의도 펠리스웨딩홀에서 열린 경기 조인식 및 기자회견이었다. 밥 샙은 (흥분할 상황도 아닌데) 갑자기 이왕표를 밀쳤고, 이왕표는 따귀로 응수했다. 그리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경기방식도 프로레슬링이 아닌 MMA로 발표됐다.
하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몸싸움 상황이 정리된 후 이왕표와 밥 샙은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를 나눴고, 당초 WWA(프로레슬링단체) 타이틀매치로 열릴 계획이었던 경기도 울트라FC 초대챔피언타이틀매치로 즉석에서 변경됐다. 주최 측도 좀 어색했는지 아나운서가 “이왕표 선수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벨트”라며 울트라FC 벨트를 꺼내놓았다. 또 주최 측 관계자가 “밥 샙이 30분 전 기자회견장에 도착해 이왕표 선수와 룰에 대해 협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대부분의 미디어가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 11월 8일 한 무술전문 인터넷 매체가 ‘이왕표, 밥 샙은 쇼를 하라’는 기사를 통해 기자회견이 철저하게 연출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한국프로레슬링연맹의 최두열 기획실장은 해당 매체에 거칠게 항의했다. “누구는 쇼인지 모르는가. 프로레슬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기사를 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해당기자가 “프로레슬링이 아닌 격투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 이왕표(왼쪽)와 밥 샙. | ||
그리고 1분 57초 만에 경기를 마무리 지은 이왕표의 암바도 아주 어색했다. 마운틴 자세에서 이왕표에게 어설픈 파운딩 공격을 하던 밥 샙이 거의 오른팔을 누워있는 이왕표에게 내주다시피 하면서 암바에 걸렸다는 의혹이 일었다.
경기 후 인터넷은 폭발했고 많은 미디어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종격투기의 인기에 편승해 종합격투기를 한다면서 프로레슬링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왕표를 두둔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석연치 않은 경기에 대한 팬들의 ‘어이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부적절한 스폰서 논란
이런 상황에서 장안동 유흥업소가 대회 스폰서였다는 지적까지 네티즌에 의해 제기됐다. 이 유흥업소가 스폰서로 참여했고, 특히 12일 경기 당일 링 위에서 이왕표에게 격려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13일 MLB PARK라는 사이트에서 “어제 이왕표-밥 샙 경기 이후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이 바로 장안동 ××××입니다. 어제 경기의 스폰서 중 하나였는데 도대체 뭐하는 곳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아무리 프로레슬링이 힘들다고 해도 (스폰서를) 좀 가려서 받아야하지 않나 싶네요’ 등의 거북한 답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한국프로레슬링연맹 측은 “고 김일 선생님을 추모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수익은 바라지도 않았다. 당초 2억 원의 경비가 예상됐는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예정된 스폰서가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비를 1억 5000만 원으로 줄였지만 후원금이 7000만 원밖에 되지 않아 큰 적자를 봤다”고 설명했다. 생존이 걸린 힘든 상황에서 누구의 후원을 받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최두열 실장은 “미디어에서 너무 야박하게 다루지 않았으면 한다. 큰 적자를 감수하면서 김일 선생님을 기리고, 또 어떻게 해서든 한국프로레슬링을 살리겠다고 힘들게 추진한 이벤트다. 팬들이 재미있게 즐기고, 또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프로레슬링 발전에 도움이 됐다면 그만이다. 국내언론이나 팬들이 프로레슬링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격투기 및 프로레슬링 전문가로 이번 경기의 녹화중계(MBC ESPN)의 해설을 맡은 천창욱 씨는 “참 말하기가 애매한 경기가 됐다. 솔직히 방송이 나가도 걱정이다. 애매한 장면이 많아서 보이는 상황만 얘기했다. 기자들이 보는 각도와 카메라가 보는 각도가 다를 수 있다. 함부로 워크경기다 아니다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 단지 주최 측의 준비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었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표-밥 샙의 경기는 오히려 먹고 살기 어려운 한국프로레슬링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 경기라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