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하여 2일 입단식 참석을 위해 부산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인터뷰하는 홍성흔.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홍성흔의 인기와 스타성을 현장에서 제대로 느낀 기자는 아내 김정임 씨, 딸 화리, 그리고 생후 2개월된 아들 화철(‘애칭’이 아닌 실명이다)과 함께 부산행 비행기에 올라 홍성흔과 기내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산행 이륙 전
부산으로 향하는 홍성흔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홍성흔의 이런 표정은 플레이오프전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부분이다. 심경을 묻자,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10년 만에 처음(?) 갖는 입단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여유가 안 생긴다. 롯데 이적을 발표한 직후 며칠 동안 편치 못한 심정이었다. 10년간 몸담았던 두산을 떠난다는 게 참으로 힘들더라. 팬들이나 구단 관계자들보다 내가 더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좀 전에 공항에서 만난 팬들에게 사인을 하는데 여전히 내 이름 밑에 등번호 49가 아닌 22로 쓰려 했다. 10년의 세월을 털어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홍성흔은 며칠 전 손시헌을 만났다. 손시헌은 상무에서 제대 후 내년 시즌부터 두산 타석에 선다. 두산에서 생활할 때 누구보다 홍성흔을 따랐던 손시헌은 홍성흔의 롯데 이적 소식을 듣고 찾아와선 “집안의 가장을 잃은 느낌”이라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자기는 돌아오는데 내가 떠나는 게 믿기지 않은 모양이더라. 녀석이 우는데 마음이 어찌나 찡하던지,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나도 두산에 있을 때 심정수, 강혁, 정수근 등 많은 선수들을 떠나보내며 상실감에 힘든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마 시헌이뿐만 아니라 두산 선수들 모두 그런 마음일 것 같아 미안함이 앞선다.”
홍성흔은 2007년 겨울과 2008년 겨울의 차이점을 묻는 기자에게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린다. ‘지옥과 천당’이라고.
“작년에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미끄러지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라면 이해가 되나? 너무나 괴롭고 힘든 나머지 우울증까지 걸릴 정도였다. 그렇게 잔인한 겨울을 보낸 끝에 올해 너무 큰 보상을 받았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겨울 동안 독하게 마음먹고 전지훈련 떠난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훈련했던 결과였다. 그 당시에는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큰 교훈을 얻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륙 후 상공에서
두산 선수로 뛸 당시 홍성흔이 갖고 있는 롯데에 대한 이미지가 궁금했다. 홍성흔은 “롯데팬들의 현란한 응원이 부럽기도, 방해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2007년까지만 해도 뒷심이 없는 팀 같았다. 그러다 2008년 들어오면서 가르시아 강민호 이대호 조성환 선수 등이 주축을 이뤄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마지막 가서도 처지지 않고 파워를 발휘하는 팀으로 변모했다. 롯데 하면 ‘응원’이 떠오를 만큼 팬들의 응원은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사직 노래방’으로 불렸을까. 사직구장에서 경기를 하다보면 부산 팬들의 응원에 현혹된 나머지 경기에 집중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선 유독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이적이 눈에 띈다. 그러다보니 프랜차이즈란 개념이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성 기사도, 또 ‘배신’ 운운하는 몇몇 팬들의 안타까운 글도 눈에 띈다. 홍성흔도 그 중심에 있었던 탓인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 부산으로 떠나기 전 팬들에게 사인을 하는 모습. | ||
그렇다고 해서 두산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진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두산도 자신을 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팀이 갖고 있는 한계, 그 틀을 깨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갈 수 없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 프랜차이즈 스타라면, 밥값을 할 수 있는 선수라고 믿는다면 애정과 신뢰를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 홍성흔이었다.
홍성흔의 롯데 이적 발표가 나자, 기자들은 ‘과연 홍성흔이 롯데에서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게 될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명타자, 1루수, 포수 등 홍성흔을 세울 수 있는 포지션이 여러 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 포지션은 감독님이 결정할 부분이다. 포수는 여전히 나한테 매력적인 자리지만 2년 여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솔직히 지금은 포수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다. 어차피 주전은 힘들 테고 강민호 포수가 체력적으로 지칠 때 백업요원으로 들어간다면 몰라도 내 입으로 포수 운운하고 싶진 않다. 로이스터 감독님이 잘 판단하실 것이고 감독님이 지시하는 포지션에서 열심히 뛸 생각이다.”
지난 시즌 동안 두산의 지명타자로 뛰었던 홍성흔은 타율 0.331(타격2위)에 8홈런 63타점으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만약 그가 원했던 대로 포수 마스크를 계속 썼더라면 이런 좋은 성적이 가능했을까.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경문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감독님이 내 배팅 능력을 미리 알아보시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지명타자란 자리는 컨디션 좋은 선수만 들어간다. 그러나 감독님은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용하셨다. 계속 포수를 했더라면 지난 시즌의 성적은 물론 이적 시장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김해공항 착륙
홍성흔의 별명은 ‘오버맨’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왜 ‘오버맨’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 ‘오버맨’이란 타이틀 때문에 종종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직장 상사에게 욕을 먹었는데도 밝게 웃으며 생활한다는 게 쉽지 않다. 나 또한 때론 인상도 쓰고 욕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워낙 ‘홍성흔=오버’로 인식된 탓에 얼굴을 찡그리지 못했다. 가끔 힘들 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면 바로 주위에서 ‘무슨 일 있느냐’고 한마디씩 던지는 바람에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부분도 결국엔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항상 ‘긍정의 마인드’로 살려고 노력하게 되더라. 롯데에선 더더욱 ‘오버맨’이 될 수밖에 없다. 팬들의 응원에 오버 안 하고 어떻게 살 수 있겠나.”
홍성흔은 4년 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중, ‘두산을 떠난 선수 중 제일 먼저 데려오고 싶은 선수는?’하는 질문에 ‘정수근’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수근을 데려오는 대신 홍성흔이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해공항에 도착한 홍성흔 앞에는 홍성흔의 팬클럽 ‘아도니스’ 회원들이 ‘홍성흔 선수의 롯데 입단을 축하합니다’란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을 했다. 꽃다발과 회원들에 파묻힌 홍성흔의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부산에서 또 다른 야구 인생에 도전하는 홍성흔과 그의 가족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소원하며 처음 시도해 본 ‘항공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