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파이터’, ‘파이팅 뷰티’로 유명한 여성파이터 임수정(23)을 길러낸 이기섭 관장(40·삼산이글체육관)이 <일요신문>에 감추어왔던 스토리를 공개했다.
이기섭 관장은 오류중 1학년 때까지 육상을 했다. 주종목이 단거리였는데 신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거리로 전환했다. 하지만 장거리를 하기에는 심폐기능이 나빴다. 그래서 축구부를 기웃거리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교졸업 후 수원전문대로 진학해 건축전문가의 꿈을 키운 이 관장. 대학 1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준비하던 1988년 1월 6일 끔찍한 사고를 겪게 된다. 한 건물의 변압기를 손보던 중 그만 감전된 것이다.
이기섭 관장의 설명은 리얼했다. 당시 변압기의 전압은 3만 2000볼트, 한 가닥만 닿아도 3000볼트였다. 위험하다는 국내 가정용 전압이 200볼트이니 엄청난 수치다. 이렇게 엄청난 전압이 몸에 닿으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몸은 도체잖아요. 전기가 흐르죠. 엄청난 전압이 들어오면 전기가 순식간에 온몸을 타고 돌죠. 그러다 몸이 다 받아들일 수 없으면 터지는 겁니다. 폭탄 터지듯 ‘펑’하고요. 보통은 손바닥이나 발바닥 이런 곳이 터지죠.”
20세 혈기왕성한 대학생이던 이 관장은 당시 멋을 부린다고 손에 꽉 끼는 가죽장갑과 운동화도 꼭 맞는 것을 착용했다. 이것이 사고를 한층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손에서 터지지 못한 전기가 왼쪽은 팔 전체에서, 오른쪽은 손목에서 터진 것이다. 왼쪽 옆구리도 일부 사라졌지만 양 다리만은 무사했다.
▲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고 의수를 낀 이기섭 관장이 건강한 두 발을 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이후 4년은 정신이 없었다. 두 팔이 없는 삶은 상상하면 간단하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새로운 몸에 적응을 하고, 뭔가 다른 일을 시도하기까지가 4년이나 걸린 것이다. 의수도 없던 시절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해 “병신 처음 봐?”라고 악다구니를 퍼붓기도 했다. 자살도 두 차례 시도했지만 목숨은 질겼다.
20대 중반에 마음을 잡고, 경기 북부 전곡에 당구장을 열었다.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당구도 다시 배웠다. 오른팔에 의수를 끼고, 왼발을 큐걸이로 사용하는 진기한 기술을 개발했고, 3개월 만에 300 실력이 됐다. 이 관장은 컴퓨터 마우스도 발로 사용한다. 그래서 삼산체육관의 컴퓨터 마우스는 책상 위가 아닌 바닥으로 내려져 있다.
이렇게 나름대로 당구장 주인으로 살아가던 삶은 98년 초 다시 전기사고 때문에 한순간에 날아갔다. 누전으로 당구장에 불이나 건물 전체를 태워버린 것이다.
“제 이름 끝자가 섭(燮)인데 가만히 보면 불 화(火)가 두 개나 있어요. 개명하라고 하는데 돈 50만 원이 아까워서 아직도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이 관장은 시골 초등학교의 축구부 코치로 변신했다. 워낙 축구를 좋아한 까닭에 당구장 시절 선수로 못다 이룬 열정을 조기축구회에서 쏟아 부었다. 당연히 실력도 좋아 전곡, 연천 지역 동아리축구계에서는 ‘팔 없는 축구선수 이기섭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다행히도 성실하게 아이들을 지도한 결과 신생팀이 군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작은 쾌거를 연출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축구코치는 보람도 있었지만 생활이 힘들었다. 50만 원의 월급도 받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던 차에 1999년 12월, 태권도를 거쳐 무에타이에 푹 빠져있던 고교동창 윤한채 씨(현 대한무에타이협회 사무총장)로부터 연락이 왔다. “북가좌동에 체육관을 새로 여는데 내가 너 재워주고 먹여 줄테니 무조건 올라오라”는 내용이었다. 무에타이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윤 씨는 이 관장의 친구이자 스승이 됐다.
▲ 제자 임수정과 함께. | ||
그의 지도철학은 확실하다. ‘모든 것이 선수 위주’다. 수련생이 돈이 없으면 관비를 받지 않고, 자신도 생활보호대상자이면서 관비를 모아 선수들에게 재투자했다.
“제가 몸도 성하고, 처자식이 있다면 이렇게 무에타이와 제자들한테 미쳐서 살지 못할 겁니다. (임)수정이 덕분에 체육관이 알려져서 남들은 삼산체육관이 돈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사실과는 좀 달라요. 앞으로 더 아프지 않고, 그리고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제자들과 무에타이를 수련하면서 사는 것이 꿈입니다.”
이기섭 관장이 제자들의 타격지도를 위해 매트를 잡는 방법은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기술이다. 의수를 낀 오른팔에 매트를 단단히 동여매고, 몸통에 둥근 보호대를 착용한다. 그렇게 한창 시범을 보인 이 관장은 손에서 냄새가 난다며 “손 좀 씻어야겠다”라고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유머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힘들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