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정지원(정): (인터뷰 준비 내내 속닥거리는 두 선수를 향해) 두 선수가 정말 친한가 봐요? 마치 사귀는 남녀처럼^^.
김효범(범): 6월에 이적한 현중 형과 서로 존칭을 쓰다가 두 달 후쯤 “우리 언제 친해지죠? 형!” 했더니 현중 형이 “우리 안 친해요?”라고 해서 “친해지면 말 놓으세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바로 놓더라고요(웃음).
김현중(중): (효범과)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함께 지내는 것 같아요. 요즘 우리(모비스팀)는 만화영화 <슬램덩크>의 주인공들 같아요. 완전히 뭉쳤어요. 팀 전체가 서로를 위해서 닭살 돋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해요. 경기를 할 때나 훈련을 할 때에도 “우린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말자!” 등 유치해 보이는 격려의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화됐어요.
정: 두 선수가 특히 친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각자 서로의 장단점을 얘기해줄 수 있나요?
범: 현중 형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성격이죠. 지금까지 한 번도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팀 전체가 현중 형 중심으로 뭉치게 됐어요. 사실 저같이 재수 없는(웃음) 스타일과 잘 맞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니에요? 전 좋고 싫은 게 너무도 분명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남들이 저에게 쉽게 다가오질 못 하는 편이에요.
중: 아! 되게 부담스럽게 추켜세워 주네. 제가 화를 잘 안내는 것은 ‘역지사지’ 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고요. 전 효범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리더십은 한 수 위에요.
정: 서로 한 팀이 된 지 이제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각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겠네요?
중: 물론 있었죠. 밖에서 효범이를 볼 때는 솔직히 ‘저 친구는 우리와 다른 놈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경기 중에 다른 선수들이 할 수 없는 멋진 플레이를 해도 괜히 얄밉고 싫었어요. 그런데 친해지고 나니까 효범이한테 반해서 요즘은 골 세리머니까지 배워서 흉내를 내고 있어요(웃음).
범: 저도 처음에 많이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솔직히 철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었던 상황이라 오는 상처를 다 받아야 했어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해봤어요. 제가 악플 횟수로는 아마 국내 프로농구 선수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한 4개월 정도 흐르니까 저에 대한 비난과 악플에 담담해지더군요.
정: 김효범 선수가 본 김현중 선수의 모습은 어땠나요?
범: 저도 작년에 11연패에, 꼴찌에, 수모란 수모는 다 겪어봤거든요. 그 누가 우리 팀에 오더라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난 8월 연습경기를 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했죠. 현중 형하고 호흡이 너무 잘 맞는 거예요. 특히 우리 둘의 수비 호흡은 완전히 환상이었어요.
정: 김현중 선수는 오리온스와 LG를 거쳐서 모비스까지 오게 됐는데 김승현 등 뛰어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있어서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겠네요?
중: 선배들의 기량도 뛰어났지만 결국 문제는 저였어요. 생각 자체가 그릇되다 보니까 되는 게 없었어요. 목표의식도 희미해지고 경기 때 뛰질 못하다 보니까 점점 놀 궁리만 하게 되더라고요.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목표를 갖고 상무에 입대했어요. 상무에서는 친구인 양동근에게 농구를 배우기 위해서 일부러 룸메이트를 자청하기도 했죠.
정: 결국 양동근 선수에게 많은 걸 얻어냈나요?
중: 정말 그 친구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농구도 농구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에 더 감동을 받았어요. 코트에서는 양동근의 리더십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함께 뛰어봤지만 가장 어려운 순간에 양동근에게 공을 주게 되더라고요. 결국 그 친구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얘기죠. 한번은 자려고 누웠는데 책상에 앉아서 영어공부에, 일기에, 농구일지까지 꼼꼼히 쓰는 친구를 보면서 제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됐어요.
정: 김효범 선수는 오랜 외국생활을 했었죠? 언제 한국을 떠난 건가요?
범: 초등학교 4학년 때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갔어요. 한국에서는 어린 시절에 시험점수 27점을 받아서 어머님께 100점에서 부족한 73대의 매를 맞은 적도 있어요. 어릴 적 제 일기장에 “엄마가 지금 개가 도둑을 지키듯 나를 지키고 있다”라는 글도 있더라고요. 그만큼 제 어린 시절이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정: 이제 내년 4월이면 상무에서 양동근 선수가 복귀하게 되는데 포지션이 중복되는 김현중 선수는 신경이 좀 쓰이겠네요?
중: 아니요. 이 시각 현재까지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안했어요. 물론 동근이가 내년 4월에 오는 건 알고 있죠. 오히려 동근이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다 보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현중은 송도고와 동국대 직속 선배인 김승현의 ‘아류’ 정도로 저평가됐었고 팀에서 식스맨의 역할도 차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위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당당히 우뚝 서 있는 극적인 반전을 연출하고 있다. ‘영원한 기대주’로 끝날 것 같았던 김효범은 팀내 에이스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 필자가 그에게 더 끌리는 건 타고난 운동 능력보다 인터뷰에서 확인한 성숙된 정신이다. 두 선수에게 진정한 ‘인생 역전’의 개념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CJ미디어 아나운서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