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우 KBO 총재 사퇴 후 새 총재 추대 문제로 야구계가 시끄럽다. 풍선 속 인물은 박종웅 전 의원 | ||
# KBO 총재의 역사
현 신상우 총재의 임기는 본래 내년 3월까지다. 하지만 ‘장원삼 트레이드 파문’ 이후 책임을 지고 조기사퇴한다는 뜻을 밝혔다. 신상우 총재를 포함해서 역대 KBO 수장을 지낸 인물은 10명. 그 가운데 ‘민선’ 총재라 할 수 있는 인물은 98년 취임했던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뿐이다. 당시 사상 첫 ‘자율 총재’를 뽑자는 취지에서 8개 구단이 ‘구단주 총재’ 체제를 결의했고 그 결과 박용오 전 회장이 총재 임무를 맡았다. 박 전 회장은 무보수로 2005년까지 총재 업무를 수행했다.
박용오 전 회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총재들은 모두 정치권에서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였다. KBO는 사단법인이다. 원칙적으로 정치권 입김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딱 하나의 조항이 문제되곤 했다. KBO 정관에는 ‘총재, 사무총장, 감사의 취임은 감독청 승인을 받는다’고 명기돼있다. 감독청이란 바로 문화체육관광부를 의미한다. 바로 이 조항 때문에 정치권에선 KBO 총재 자리를 ‘당연히 낙하산 인사가 가능한 곳’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 유영구 이사장 사퇴
12월 16일 프로야구 사장단이 조찬 모임을 통해 신임 총재로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추대할 뜻을 모았다. 며칠 뒤 이사회를 열어 공식 추대함으로써 발빠르게 인선 문제를 마치려했다. 평소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유 이사장 역시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게 측근들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유영구 이사장은 12월 22일 돌연 후보 사퇴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의 반응을 종합하면 “이런 분위기에서 총재를 맡는 게 어렵다”는 설명이 있었다. 표현은 부드럽게 했지만 결국 정치권 외압 때문이라는 것으로 야구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보다 구체적인 정황이 있었다. 유영구 이사장 추대 움직임이 보이자, 감독청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KBO에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절차상 협의 없이 일처리를 한 점이 유감이다”라는 뜻을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12월 17일에도 감독청 관계자가 KBO 하일성 사무총장의 모친상에 조문을 가 이 같은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 자리 둘러싼 루머들
일찍부터 차기 KBO 총재로 거론됐던 인물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인 박종웅 전 의원이다. 박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YS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YS가 아들 현철 씨의 정치 재개와 함께 박 전 의원의 자리를 이 대통령 측에 부탁했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그래서 ‘낙하산 인사’가 KBO 총재를 맡을 경우엔 박종웅 전 의원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일찌감치 나돈 것이다.
지난 가을 이후 프로야구계에는 ‘각종 단체장 가운데 YS에게 주어진 지분이 두 자리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KBO 총재직이다’라는 식의 소문으로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YS 측 인물이 총재를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으니 결국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영구 이사장이 사퇴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총재 인선 문제는 1월 말이나 돼야 결론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요한 건 박종웅 전 의원이 총재를 맡는 것에 대해 여론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거의 모든 언론이 정치적 외압에 대해 거센 공격을 가하고 있다.
# 오려면 ‘실세’ 오라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8개 구단 사장단이나 프로야구 관계자들이 정치인의 총재 취임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3년 전 신상우 총재 취임 시절에도 그랬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반대 견해가 있었지만 “이젠 힘 있는 정치인이 와서 야구계 현안을 해결하는 것도 생각해볼 때다”라는 의견이 공존했다. 즉 야구장 건립 문제나 프로야구 구단에 대한 세제 지원 등 야구인의 테두리 안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정치인 출신 총재의 역량을 통해 이뤄보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프로야구는 ‘현 상황에서 실세가 아닌 정치인 출신 총재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학습했다. 신상우 총재는 재임 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남겼고 관중 증가를 이끌어내는 등 나름대로 공헌이 있었지만, 야구인들의 염원인 프로야구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선 그다지 한 일이 없었다. 결국 8개 구단 관계자들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또다시 ‘낙하산 인사’가 총재를 맡게 되더라도, 해당 인물이 현 정권의 실세이기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
# 어떤 자리이기에
그렇다면 KBO 총재란 대체 어떤 자리이기에 정치권에서 자꾸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려하는 것일까. ‘보은’의 의미로 누군가를 내려보낸다는 건 그 자리가 혜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당연한 논리다.
야구 규약에 따르면 커미셔너인 KBO 총재는 한국프로야구와 관련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자리다. 일종의 ‘야구 대통령’이다. 연봉 2억 원, 판공비는 1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 승용차도 제공된다. 해외 업무 때에는 프로야구 커미셔너로서 대접을 받는다. 내부적으로는 최고 인기스포츠의 수장이므로 언론에 자주 노출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어차피 KBO와 관련된 실무는 사무총장이 주로 처리한다. 이런 조건 때문에 KBO 총재직은 ‘낙하산 인사’가 가능한 주요 단체장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드는 직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해 최근 프로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참에 총재직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꿔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야 ‘낙하산 인사’가 불가능해지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마침 박용오 전 총재 시절의 사례도 있다.
KBO 측에선 총재 인선이 혼란을 빚자 “공모를 통해 선출할 수도 있다”는 의견까지 내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종웅 전 의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가라앉으면 1월 말쯤 재시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겠지만 현재로선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쉽게 전망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때까지 반대 의견이 잠잠해질지도 미지수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