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9단(왼쪽)과 강동윤 5단이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전에서 맞대결 하고 있다. | ||
지난해 말부터 계속돼온 이번 10번기에서 강동윤은 두 기전의 첫 판을 다 이겨 한때 기세를 올렸으나 이후 명인전에서 세 판을 거푸 패퇴,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고, 천원전에서도 2국을 놓친 데 이어 1월 14일 제3국까지 내줘 1승 2패로 막판에 몰렸다. 10번기의 막간에 있었던 1월 5일 제27기 KBS 바둑왕전 승자결승에서 진 것을 합하면 모두 6연패다.
강동윤의 고비다. ‘천하제일검’과 10번기를 벌인다는 건 일단 보통일이 아니다. 새로운 일인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밀리면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될 수 있다. 내상을 입고 기세가 꺾일 수가 있는 것. 그 점은 조남철에서 김인, 조훈현을 거쳐 이창호, 이세돌에 이르는 천하제일검의 계보와 역사가 잘 말해 주고 있다. 많은 기사들이 당대 일인자의 칼날에 좌절을 겪고 도전 무대에서 멀어져 갔었다.
다만 조훈현 9단에게 무수히 지면서도 2인자의 자리를 지켰던 서봉수 9단은 그래서 아주 특이한 존재였던 것이고, 이창호-이세돌의 관계는 이세돌이 이창호를 완전히 제압하고 일인자가 된 것은 아니니까 전통적인 의미에서 상례는 아니다.
10번기 같은 큰 승부에서 이기면 권좌에 오르는 것이고 지면 원래의 자리도 다음 주자에게 빼앗기는 법이다. 강동윤을 주목한 데는 그가 이세돌과 동년배가 아니라 후배라는 사실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던 것인데, 이번 10번기에서 지금처럼 반격을 못하고 물러난다면 후일이 불안해진다. 순서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게 사실이라면 뭔가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는 것. ‘뭔가’는 물론 일인자라는 것일 게다. 의식하면 힘이 들어가고, 힘이 들어가면 무겁고 무뎌지는 법. 그래서일까. 강동윤이 이제는 ‘자신과의 싸움’에 접어들었다는 지적도 들린다.
자신과의 싸움 또는 마음 비우기, 이거야말로 승부사에게는 만고불변의 숙제요 화두다. 마음을 비우라고 권유하기에는 강동윤은 아직 너무 어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예전의 일반론은 적용이 안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리가 있다. 삶의 방식이나 시각에서 이세돌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실감한다.
이세돌-강동윤 세대는 선배 세대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이어서 시쳇말로 아주 쿨해서, 승부에 졌다고 해서 내상을 입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들에게 승부는 그저 승부, 여러 게임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게임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으로 여기고 즐기는 요소가 강하다는 얘기인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켜볼 일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