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싶을 만큼 K-1을 하면 할수록 복싱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복싱을 할 때는 물론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은퇴하고 쉬는 동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링에 오를 때 복싱슈즈를 신지 않고 맨발로 오른 것 자체가 어색했다. K-1운동을 하면서 ‘내가 서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제 결심했다. 나이가 있는 만큼 복서로 운동을 마치고 싶다.”
최용수는 진지했다. 원래 과묵한 편이지만 복싱 얘기가 나오자 말문이 쉽게 열렸다. 하고픈 말이 많았던 것이다. 1월 중순 만난 최용수는 ‘복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확실히 밝혔다. K-1과의 계약이 오는 2월 말로 만료되는 까닭에 K-1고별전 등 몇 가지 정리 절차를 밟은 후 올해 안에 다시 복싱을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최용수의 복싱 컴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지됐다. 주변 지인들에게 “정말이지 복싱을 너무 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고, 이것이 한국권투위원회(KBC)에 간접적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최용수는 2007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에서 일본의 격투기 영웅 마사토에게 기권패한 후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링에 오르지 않고 있다.
컴백의 가장 큰 이유는 한 마디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원래 최용수는 복싱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큰 복서 중 한 명이다. 아마추어 경력도 없이 고등학교 때 상경해 샌드백을 두드리며 프로복싱에 청춘을 바쳤다. 2006년 2월 한국의 K-1주관사인 T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할 때도 “링의 주인은 복서다. 프로복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K-1을 택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K-1 진출도 T엔터테인먼트의 양명규 본부장이 삼고초려를 한 끝에 간신히 최용수 설득에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최용수는 “K-1에 몸담고 있으면서 후배들의 복싱경기도 많이 찾아가 관전했다. 화려한 K-1 경기장에 있을 때는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구청문화관에서는 열리는 프로복싱경기는 집처럼 편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초 (최)요삼이가 링 위에서 비운의 사고로 명을 달리할 때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 K-1에서도 활약하던 최용수가 복싱 복귀를 결정했다. 사진은 2001년 권투선수 시절의 모습. | ||
“K-1도 훌륭한 프로스포츠다. 하지만 복싱은 다른 매력이 있다. K-1이 짧은 시간에 한 방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반면 복싱은 스킬은 물론이고 체력, 정신력 등 더 많은 것을 평가한다. 12라운드 복싱에 최적화된 근육과 운동신경이 짧은 시간(3라운드)에 킥까지도 사용하는 K-1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컨대 나도 마사토에게 킥을 맞아 졌는데 만일 복싱 룰로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결과는 다를 것이다. 이제 내가 잘하는 종목을 하고 싶다.”
그럼 최용수의 프로복싱 컴백 시나리오는 어떻게 짜여 졌을까. K-1과의 계약만료는 2월 말이지만 최용수는 3월 국내 K-1맥스 경기에서 고별전을 치른다.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기 위해서다. K-1 측이 6월께 한 번 더 경기를 갖자고 주문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생각이 없다. 하반기 복싱 컴백에 전념할 계획이다.
한편 KBC는 최용수의 컴백에 대해 대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KBC의 황현철 홍보부장은 “이미 소식은 들어 알고 있다. 원래 KBC는 격투기에 복싱시장이 잠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격투기 진출 선수에 대해 자격정지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최용수의 경우는 이미 KBC 내부의 심사과정을 거쳐 승인하겠다는 데 뜻이 모아졌다”라고 말했다. KBC가 최근 현역선수 제한 연령을 37세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37세 제한 조치는 한국챔피언 이상을 지낸 선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K-1에서 계속 운동을 해온 최용수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최용수가 뛰었던 슈퍼페더급(주니어라이트급)은 WBC의 경우 챔피언 자리가 공석이고, WBA는 베네수엘라의 천재 복서 호르헤 리나레스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또 바로 한 체급 위(라이트급)에는 매니 파퀴아오(필리핀)가 있다. 최용수가 한두 차례 전초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세계타이틀매치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한국 최고령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은 2006년 12월 WBC페더급 왕좌에 오른 지인진(33세5개월)이었다. 잘하면 이 기록이 깨질지도 모르겠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