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후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제37대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박용성 두산 회장이 취재진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아래 작은 사진은 이연택 전 회장 | ||
계속되는 관치 희생양
‘체육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연택 회장은 1989년 체육회장이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으로 바뀐 이후 두 번이나 선거를 통해 체육수장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체육회장 선거를 3번이나 치른 탓에 투표권을 쥔 산하 체육단체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특히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 탓에 여건도 좋았다. 본인도 ‘연임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고 또 미뤘다.
이연택 회장의 3선을 현 정권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회장이 공개적으로 정부방침(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에 반기를 들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체육회와는 별도로 유례가 없는 체육인 신년하례식을 치르는 등 체육회와 정부의 골은 깊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회장이 출마했다면 정부의 의사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의 불출마와 관련해서는 정부 개입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검찰 등을 동원해 이 회장의 비리를 캔다는 소문이 나자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연택 회장이 꿈을 접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구 정권의 김정길 회장이 임기를 마치겠다며 강하게 버티다 검찰 내사설(카드사용 내역 조사 등)이 흘러나온 직후 갑자기 사퇴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몸소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는 이 바닥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아는 이연택 회장이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것이다.
정부의 불간섭 선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간섭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미 이연택 회장의 불출마가 결정된 상황에서 체육인들이 스스로 누구를 선택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선거기간 내내 ‘정부가 박용성을 민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박용성 회장이 중앙대 이사장이고, 유인촌 장관이 중앙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지낸 한 체육계 유력인사는 “내가 확인한 결과 현 정권이 박용성 회장을 꼭 집어 지원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오히려 박용성 회장이 가진 개인적인 능력, 그리고 두산과 중앙대 인맥이라는 막강한 배경이 그를 유력한 후보로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용성 회장 측은 서울 시내 한 호텔에 선거캠프를 차리고 두산과 중앙대 라인을 총동원해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해 도움을 줬다는 물증은 찾기 어려웠다. 박 회장 스스로 당선 직후 “정부에서 낙점받았다고 하지만 그런 사실은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번 선거 자체가 굳이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분석이 자리하고 있다.
물거품 된 단일화의 꿈
19일 투표 결과 박상하 국제정구협회 회장은 12표를 얻었다. 그리고 이연택 회장의 지원사격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이상철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5표를 얻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박용성 후보의 대항마가 되기 위해선 정통 체육인 출신인 둘의 단일화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가 일찌감치 나왔다. 결과적으로 둘의 표수를 합쳐도 박용성 회장에게는 크게 못 미쳤지만 일찌감치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선거판세가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상철 회장은 고려대 61학번(이명박 대통령과 동기)인 유준상(4표), 장경우(1표) 후보와의 단일화를 꾸준히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큰 변수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단일화 프로젝트는 결국 결선투표까지 가면 그때 하겠다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론만을 낳았을 뿐이다. 선거결과가 말해주듯 객관적으로 박상하 후보 쪽으로 단일화가 유력한 상황에서 이상철 후보가 포기하는 방안이 기대됐지만 이상철 후보는 이연택 회장의 표를 믿고, 최소한 2등은 한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다. 결국 이미 불출마 선언을 한 이연택 회장의 표(호남표 위주)는 기대만큼 이상철 후보에게 쏠리지 않았고 단일화는 한 번도 그 파괴력을 선보이지도 못한 채 사그라진 것이다.
단 한표도 못 얻은 후보도
박종오 후보(61·UMU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단 한 표도 획득하지 못했다. 박 후보는 출마선언을 하기 전 각 언론사에 연락을 해 ‘체육회장 선거와 관련해 엄청난 제보를 할 것이 있다’고 알렸다. <일요신문>에도 연락이 와 밀착취재를 하려고 했으나 본인이 직접 출마선언을 하는 바람에 ‘순수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별도로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스포츠이벤트 프로모터, 스포츠기자, 박근혜 경선후보 기획특보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박종오 후보는 선거 전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미 2위는 확보했다. 세상이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19일 마지막 유세에서도 체육회 예산 3배 증액(5000억 원), 전 국토의 스포츠 낙원 캠페인 등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깜짝 공약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많은 체육인들은 “순수한 의도는 좋지만 마치 지난 대통령선거 때의 허경영 후보를 보는 것 같다”는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대한체육회장 입후보 자격을 누구나 가능하도록 완화했는데 향후 선거룰을 고쳐 ‘이름 알리기’ 차원의 출마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