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정지원(정): 모비스와 1차전에서 완패했는데 경기 내용이 너무 좋지 않았네요?
안준호(안): 울산 모비스는 정규리그 우승팀입니다. 우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일단 유재학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합니다. 모비스는 전 선수들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유기적인 플레이를 구사합니다. 스타건 스타가 아니건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가 모비스의 힘입니다.
정: 지금까지 역대 플레이오프 기록을 보면 1차전을 승리한 팀의 챔피언결정전 진출 확률은 83.3%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1차전을 패한 삼성의 챔피언전 진출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는 데이터가 나오는데요.
안: 두고 보십쇼. 저는 우리 팀의 대반전을 기대합니다. 그 역사를 우리 삼성이 다시 새롭게 쓰는 것도 도전해볼 가치가 높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100% 전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1차전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질 수밖에 없었던 명백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차전부터는 우리 삼성의 본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안 감독의 말대로 삼성은 2차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정: 6강 플레이오프에서 LG와 피말리는 접전을 치른 삼성과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대비한 모비스의 상황이 정반대인데요. 여기에 따른 두 팀의 체력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 게 아닐까요?
안: 당연히 우리가 불리하겠죠. 하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체력의 열세를 극복할 겁니다. 예전 무협지를 보면 내공이 대단한 도사들이 힘을 쓸 때 쓰고 뺄 때 빼는 것에 능통하듯이 우리도 경기운영의 묘를 살리면서 남은 경기를 치를 겁니다. 철저히 템포 바스켓을 구사하면 체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 지난 올스타전에서 안준호 감독이 이상민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 ||
안: 레더는 승부근성이 매우 강한 선수입니다. 때로는 지나칠 때도 있습니다. 득점과 리바운드에 대한 욕심도 대단히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과열된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다독거려줍니다. 아무리 유능한 선수일지라도 혼자서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부분을 계속 짚어주면서 팀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혹시 경기 때 무리하는 모습이 나오면 벤치로 불러 한 2분 정도 쉬게 합니다.
정: 서울 삼성은 그야말로 ‘스타군단’입니다. 선발 5명 안에 드는 것조차 ‘하늘에 별 따기’인 팀인데 그들을 지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안: 어느 감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스타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내 속은 검게 타들어도 상관없습니다. 때로는 스타나 고참을 막론하고 엄격하게 같은 잣대로 질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모름지기 감독은 가장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스스로 본인들이 알아서 하게끔 지도했을 때가 가장 성과가 좋았습니다.
스타들을 다루기가 어려운 만큼 감독이 혜택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의 스타의식과 능력 그리고 잠재력이 하나로 뭉쳐졌을 때에는 상상할 수 없는 힘과 저력이 나옵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원천입니다. 저희는 올 시즌 그 저력을 봤습니다. 6연패 뒤에 9연승으로 일어섰고 다시 4연패 뒤에 4연승을 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았던 이런 결과 뒤에는 그들만의 끼가 숨어 있었습니다.
정: 만일 삼성이 모비스를 꺾고 챔피언전에 진출한다면 저쪽에서는 동부와 KCC 중 어느 팀이 올라올 것 같나요?
안: 동부는 김주성이 지난해와 같진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에 KCC는 하승진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은 동부가 올라와서 다시 한 번 ‘어게인 챔피언전’을 치르고 싶습니다.그렇게 된다면 반드시 지난해의 패배를 설욕하고 싶습니다.
안 감독은 최근 ‘화술의 달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어눌한 듯 의미심장한 얘기를 홍수처럼 쏟아낸다. 그 안에는 감독의 고민과 유머가 녹아있다.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을 마치고 패장으로서 인터뷰실에 가보니 기자들이 아무도 없더란다. 안 감독이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 모비스 홍보직원이 다시 불러 마지못해 가 봤더니 이번엔 유재학 감독이 승장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정말 호텔로 가려던 안 감독을 모비스 홍보직원이 사정사정해서 다시 인터뷰실로 데려갔단다.
화가 단단히 난 안 감독의 첫 마디는 “모비스가 (선수들뿐만 아니라) 감독한테까지 체력적으로 지치게 하는군요.저 여기 세 번째 오는 겁니다.” 일순간 인터뷰실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화를 유머로 표출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안 감독에게 올해 계약이 만료되는 해인데 어떤 입장인가를 물었더니 짧고 분명하게 답했다. “저는 그냥 여기(삼성)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뼈를 묻을 작정입니다.”
CJ미디어 아나운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