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대전지방경찰청이 상습마약사범으로 검거한 전직 씨름선수는 부산지역의 한 사회체육회 심판이사로 활동하던 이 아무개 씨다. 이 씨는 이미 4년 전에도 마약 투약 혐의로 검거된 바 있다. 적발된 이후 재활치료를 받아오던 중 다시 마약에 손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씨는 재활치료를 모두 끝내고 사회로 복귀해 생활하던 중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4년 만에 처음 마약에 다시 손을 댔다가 붙잡혔다.
더욱이 이 씨는 지난 3월 10일 대전 유흥업소에서 마약을 투약하다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대전지방경찰청 한 관계자는 “확실한 정보원의 제보로 검거한 20명 중 대전 지역 마약사범은 10%도 안 된다”며 “인천, 경남 지역 등에서 검거했는데 이 씨는 부산 지역 한 유흥업소에서 유흥업소 종업원과 함께 필로폰을 투약하다 적발됐다”고 밝혔다. 대체적으로 성적 쾌감을 높여준다는 이유로 필로폰 투약을 하는데 이 씨의 경우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씨가 어떤 경로를 통해 마약을 손에 쥘 수 있었나 하는 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된 이들은 대부분 택배, 인터넷, 퀵서비스 등을 통해 마약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는데 이 씨만이 마약 구입 통로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수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이 씨가 지역 조직폭력배와 관련이 있는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더욱이 이 씨가 거주하는 부산 지역에 칠성파라는 폭력조직이 있어 이 씨가 이 폭력조직과 접촉한 정황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중이다.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다
예전부터 씨름계는 은퇴한 선수 출신들이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다 폭력조직에 가담한다는 말들이 나돌았었다. 현재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씨가 계속 마약 구입 루트에 대해 함구할 경우 폭력조직과의 연관 혐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씨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이 씨의 고향선배인 부산 출신의 한 씨름단 감독 최 아무개 씨에 의하면 이 씨는 부산 출신으로 중·고등학교 씨름부로 활동하다 실업팀이 아닌 대학교로 진로를 선택, 동아대학교 씨름부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 재학 중에 돌연 씨름을 그만뒀다고 한다. 이 씨의 선배인 최 감독은 “이 씨는 가장 체급이 낮은 태백급 선수였다”며 “체급이 달라 한번도 같이 경기를 한 적은 없지만 그다지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이 씨는 선수생활 동안 각종 경기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수상 이력 역시 없었다. 이 씨는 씨름을 그만둔 이후 계속 부산에 거주하며 씨름선수 경력을 토대로 사회체육회 심판이사를 맡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일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씨가 활동했다는 사회체육회 역시 존재가 불분명했다. 대한씨름협회는 공식적인 씨름단만 관리하고 있어 사회체육회와 연관이 없고, 국민생활체육씨름연합회 역시 “우리가 관리하는 생활체육과 사회체육은 다르다”고 말하며 “부산 지역 사회체육회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에 체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관계자 역시 “부산에 씨름 관련 사회체육회를 본 적도 없고 명칭 자체를 들어본 일이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이 씨를 검거한 경찰관계자가 “사회체육회가 맞다”며 “이 씨가 심판이사를 맡았던 사회체육회가 두 번의 마약 투약으로 인해 굉장히 당황하며 이 씨의 제명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왔고, 이를 전해들은 씨름 관계자들은 “공식 협회 소속 체육회가 아닌 소규모 협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전직 씨름 선수들과 폭력조직의 연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기자는 감독, 현역선수, 심판 등 총 5명의 씨름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제대로 훈련받고 선수 생활한 이들이 조직과 연계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이 씨처럼 도중에 씨름을 그만둔 소위 ‘무늬만 씨름선수’인 사람들 중에 간혹 어두운 밤 세계 쪽으로 빠져드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100명 중 한두 명 정도”
한 현역 씨름 선수는 “어느 스포츠 분야든 폭력조직 쪽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며 “정말 씨름에 매진하던 선수들이 은퇴해 폭력조직에 들어가는 경우는 보지 못했고 잠깐 발을 담갔던 전직선수들이 폭력조직과 친하게 지내는 경우는 종종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폭력조직 속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등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한 씨름단 감독 역시 “100명에 한두 명 정도다”며 “씨름인이 체격 좋고 힘도 있으니까 조직과 연계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다들 건달하지 왜 힘들어하면서도 건실히 살아가겠는가”라고 씨름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들을 강하게 부정했다. 기자가 접촉한 3명의 씨름 감독 및 관계자들은 “부끄럽다”,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씨름 관계자들에 의하면 은퇴한 선수들 중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는 전직 선수들은 대부분 자영업을 하거나 직장인이 된다고 한다. 그것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장사, 식당 등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영업직 등으로 지원해 직장 생활을 한다.
마약, 그리고 폭력조직과의 연관 여부로 씨름계에 먹칠을 하게 된 이 씨. 하지만 씨름계 일각에서는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씨름을 그만둔 후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 씨는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나 씨름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문다영 객원기자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