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 전문 기자 | ||
가장 미국적인 도시로 알려진 시카고.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 원정 경기를 떠나기 전, 순간 제 머리 속에는 만삭의 아내가 떠올랐습니다. 평소 떡볶이, 순대 등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와이프에게 출산 전 작은 소원이라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원정 경기 때 가족과 동행하기로 한 것이죠.
구단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아들 무빈이랑 아내와 함께 자고 다음날 경기장으로 출근할 때도 같이 동행하는 등 평소의 원정 경기 때의 생활과는 백팔십도 다른 시간들을 보내게 됐습니다.
오늘 경기 전에는 숙소에서 일찍 나가 한인타운을 찾았어요. 한 마음씨 좋은 한인 가게 주인 아저씨로부터 시내의 맛집 가이드북을 얻어 그걸 뒤적이며 순대국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순대국집이 있는 거예요. 순대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역시 한국 분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차돌배기에다 된장찌개를 곁들여 굉장히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행복이란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최향남 선배 보면 경외심
지금 제 위치가 그리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이래 처음으로 풀타임 출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개인 성적도 나름 챙겨가는 부분들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건강하고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들이 절 많이도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다 하려면 책을 한 권 써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나이 어릴 때 아무 것도 모르고 미국에 와서 온갖 수모 다 겪어가며 빅리그 진출을 위해 발버둥 쳤고 영어가 서투른 상태에서 의사소통 부재로 오해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동양 선수에 대한 차별의 시선도 분명 있었고 몸값이 싼 선수한테는 쉽게 기회를 주지도 않지만 주어진 기회도 성적 유무에 따라 가차없이 빼버리는 게 메이저리그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향남 선배가 마이너리그에서 고군분투하는 걸 보면 정말 경외심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저도 그 상황에 처해 봤는데 그땐 제 나이가 어릴 때라 나름 잘 견뎌낼 수 있었지만 최향남 선배는 나이가 많다보니까 아무래도 더 힘들 겁니다. 한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오로지 야구 하나만 보고 자신의 인생을 모두 던질 수 있는 그 분의 의지와 도전 정신을 보면서 새삼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최향남 인터뷰 61면)
무빈이 영어실력 ‘부쩍’
참, <일요신문>에 제 일기가 연재되는 걸 알고 있는 어떤 팬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추신수 선수는 어떻게 해서 야구를 그렇게 잘하느냐?’고. 솔직히 그런 질문은 시애틀에 있는 이치로 선수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전 잘하는 선수는 아니거든요.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야구 잘하는 선수로 평가받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그 팬의 질문에 어떤 형태로든 대답을 해 볼게요. 일단 전 변화구는 노리지 않습니다. 항상 직구만 원해요. 직구를 노리다보면 변화구도 칠 수 있지만 변화구를 노려선 직구를 치기 어려워요. 투 스트라이크 이전에는 절대로 변화구에 손을 안댑니다. 그리고 타석에 설 때는 마음속으로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즉 스트라이크존을 그리는 거죠. 볼 카운트가 유리할 때는 그 원이 작고, 볼 카운트가 불리할 때는 원이 커져요. 그때는 변화구든 직구든 비슷한 공은 전부 치게 됩니다. 물론 투수에 따라서 상대하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대부분 이런 방법으로 공략해요.
무빈이가 놀아달라고 자꾸 제 팔을 잡아당기네요. 집에선 한국 말을 유치원에 가선 영어를 사용하는 무빈이의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어요. 조금 있다간 저보다 더 유창하게 영어를 할 것 같아요. 얼마 안 있으면 남동생이 태어나는데 무빈이가 잘 돌봐주겠죠? 지금도 아기가 빨리 태어났음 좋겠다고 하니까 동생이 세상에 나오면 많이 사랑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시카고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주에는 우리 집이 있는 클리블랜드로 돌아갑니다. 그때 다시 뵐게요.
시카고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