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까지 탐낸다고?
최근 일본 언론에선 묘한 뉘앙스의 기사가 보도됐다. 일본 최고 인기팀이며 탄탄한 재력을 갖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임창용을 탐내고 있다는 루머였다. 지금 요미우리에서 뛰고 있는 투수 세스 그레이싱어, 타자 알렉스 라미레스 등도 모두 야쿠르트 출신이다. 일단 요미우리가 손을 대기 시작하면 다른 구단은 자금력에서 따라갈 수 없다. 그간 숱한 사례에서 드러났다. 이런 소문이 들리자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노무라 감독은 “요미우리가 움직인다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야쿠르트 측은 펄쩍 뛰고 있다. 야쿠르트 고위 관계자는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임창용과 우리는 내년까지 계약이 돼있다. 그러니 엄연히 우리 선수다. 대체 왜 이런 얘기가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다”면서 불쾌감을 표시했다. 사실 야쿠르트 입장에선 임창용은 거의 공짜로 얻은 보물이다. 지난해 계약 첫 해에 임창용이 보장받은 연봉은 겨우 30만 달러였다. 일본내 용병 몸값으론 최저 수준이다. 그런 선수가 주전 마무리를 꿰찼을 뿐만 아니라 일본 리그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구위를 보여주고 있으니 해당 스카우트 관계자는 입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일본 야구팬들 반응 가운데에는 “임창용을 스카우트한 관계자를 승진시켜줘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런 마당에 요미우리가 달려들 수 있다는 루머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으니 야쿠르트는 바짝 긴장하는 게 당연하다. 야쿠르트 고위 관계자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다는 걸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 작년 3월 29일 야쿠르트와 요미우리 경기. 9회초 2사 야쿠르트 투수 임창용이 요미우리 이승엽과 두 번째 대결을 펼치는 장면. 연합뉴스 | ||
우선 임창용의 계약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야쿠르트와 맺은 계약은 ‘2+1’ 형태였다. 2년 계약에 3년째 계약은 옵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수 옵션이 아닌 구단 옵션이다. 즉, 야쿠르트가 원한다면 3년째 시즌에 임창용과 우선협상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엔 구단이 원하면 대개 잔류하게 된다. 따라서 현 상황에선 임창용은 내년 시즌까지는 무조건 야쿠르트에서 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에는 이승엽이 있다. 동기생인 두 선수가 같은 요미우리에서 뛰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임창용이 내년까지 야쿠르트에 남아야 하고, 이승엽은 요미우리와의 계약이 내년까지다. 따라서 2011년에 임창용이 요미우리로 이적하고, 이승엽은 요미우리와 재계약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요즘 분위기로 봐선 그다지 현실성이 없다.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야쿠르트 구단이 올 시즌 종료 후 임창용에게 새로운 다년계약을 제시할 수도 있다. 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와 우선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을 때 아예 3~4년짜리 다년계약을 성사시켜버리면 야쿠르트 고위층은 두발 뻗고 편하게 잠잘 수 있다. 실제 임창용은 야쿠르트의 연고지인 도쿄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요미우리에 비해 자유로운 편인 팀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경우 야쿠르트는 거액의 베팅을 하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수억 엔 대의 연봉이 보장될 것임은 분명하다.
▲ 배트를 휘두르며 몸을 풀고 있는 임창용. 사진출처=야쿠르트 스왈로즈 | ||
임창용은 지난달 시속 160㎞짜리 직구를 두차례 선보여 일본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까지의 임창용은 야쿠르트에선 금세 스타가 됐지만 전국구 지명도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야쿠르트가 빅 마켓 팀이 아니기 때문이란 측면이 있다. 그런데 160㎞짜리 직구에 지명도가 순식간에 높아졌다. 일본프로야구의 직구 최고 구속 기록은 요미우리 마무리투수 마크 크룬이 기록한 162㎞다. 임창용의 160㎞는 일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스피드. 각종 수치에 상당히 민감한 일본프로야구 특성상 임창용에게 엄청난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임창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승부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언론의 집중된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임창용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더운 여름이 되면 스피드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구단에서 160㎞ 기념 티셔츠를 제작한다고 했었는데, 내가 그보다 빠른 공을 던지면 티셔츠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오히려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임창용이 지난해보다 좋아진 점은 우선 변화구다. 지난해까지는 시험삼아 던졌던 포크볼성 싱커를 올해는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변화구의 각이 예리해지다보니 시속 140~160㎞ 사이에서 다양하게 구사되는 그의 직구가 더욱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포수의 역할을 꼽을 수 있다. 야쿠르트는 지난 겨울 요코하마에서 FA로 풀린 포수 아이카와 료지를 데려왔다. 아이카와와 호흡을 맞춘 뒤 임창용의 타자 상대 요령이 부쩍 좋아졌다. 임창용은 이에 대해 “작년에는 무조건 직구 위주로만 승부했는데 올해에는 아이카와가 변화구를 많이 던질 것을 주문했다. 아이카와가 직구 변화구 타이밍을 잘 읽어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올시즌엔 WBC 참가를 위해 일찍부터 몸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도 분명 좋은 성적의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매국노’에서 ‘국민 효자’로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임창용은 국내 야구팬들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3월 말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WBC 결승전에서 일본의 간판스타 이치로에게 통한의 결승타를 허용했던 장면 때문이었다. 당시 임창용은 일시 귀국 후 대표팀 전체가 청와대로 초청돼 가진 오찬 행사에도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곧바로 일본으로 떠났다. 마치 우승 실패의 원흉처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고, 그 때문에 속상한 심정이었다고 임창용은 한참 뒤 털어놓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임창용을 향해 ‘매국노’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욕을 하기도 했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전체적으로 야구팬들의 정서는 ‘안티-임창용’이 다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 무대에서 씩씩하게 던지면서 좋은 기록을 이어가는 임창용에게 야구팬들이 점점 매료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WBC 때 많이 열 받았지만 일본에서 잘 던지고 있으니 보기 좋다”, “임창용에게 세이브 기회가 너무 적어서 속상하다”, “한국 마무리투수가 일본 마운드도 평정했다” 등 칭찬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미스터 제로’와 ‘이무 타임’
일본 야구팬들은 임창용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임창용이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 경기는 끝났다고 미리 판단해버리는 분위기가 생겼다. 마치 90년대 초중반 국내 야구를 평정했던 선동열을 보듯이 말이다.
그래서 생긴 조어가 바로 ‘이무 타임’이다. 임창용의 성인 임(林)의 일본식 발음이 이무(イム)다. 여기에 부처님(佛)의 일본식 한자의 의미까지 포함된 게 바로 ‘이무 타임’이다. 즉 임창용이 등판하면 게임 끝이라는 얘기다.
메이저리그에는 ‘트레버 타임’이란 게 있다. 최고의 마무리투수 트레버 호프만이 9회에 등장할 때면 야구장에 이른바 ‘지옥의 종’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팬들의 환호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임창용도 그에 못지 않게 영광된 닉네임을 얻은 셈이다.
임창용은 ‘지옥의 종소리’와는 다른 다소 엉뚱한 테마송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 ‘007’의 주제곡이다. 영화상에서 이 주제곡이 등장할 때면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천천히 걸어 나와 결국 화면을 향해 총을 쏘게 된다. 그 총구 앞에 악당들이 쓰러져나가듯, 마무리투수 임창용이 등판한 뒤 상대 타자를 하나하나 처리해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임창용 본인이 선택한 곡이다. 더불어 ‘007’의 숫자와 올시즌 무자책점 행진을 이어가는 동안 생긴 별명인 ‘미스터 제로’가 어우러져 더욱 흥미롭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