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리더십’ 상하로 완전 소통
임시 주장처럼 보이던 박지성은 준비된 리더였다. 처음에는 한사코 주장 완장을 고사했지만 일단 맡게 되자 유럽축구의 한복판에서 보고 배운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주장 임무를 소화했다. 단순하게 감독의 말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가끔 군기를 잡는 역할에서 벗어나 코칭스태프와 선수 사이의 소통과 흐름을 이끌어냈다. 훈련 일정을 하루 일찍 통보받아 선수들이 합리적으로 훈련 준비를 하게 했고 훈련 장소를 선수들의 컨디션에 맞게 바꿀 것을 코칭스태프에게 요청하며 합리적인 선수단 운영을 이끌었다.
허 감독은 합리적인 리더 박지성의 의견을 존중하며 선수단을 관리했다. “박지성에 대해서는 군소리가 전혀 필요 없다”며 힘을 실어줬다.
젊은 태극전사들은 세계적인 구단에서 뛰고 감독의 신뢰를 받는 ‘캡틴 박’을 절대적으로 따랐다. 허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경외심을 보이기까지 했다. 기성용과 이청용 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항상 힘이 돼준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영표(32·도르트문트) 등 선배들은 ‘박지성 체제’가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내줬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주장은 필요할 때는 적극 목소리를 내며 외유내강 리더십을 보였다. 지난 2월 이란과의 원정전을 앞두고 이란의 간판선수 네쿠남이 “열성적인 10만 관중의 압박은 한국에게 지옥이 될 것”이라고 도발하자 “지옥이 될지, 천국이 될지는 끝나봐야 안다”고 되받아치며 선수단의 전의를 불태웠다. 이번 UAE전을 앞두고는 “점수를 내주지 않고 이기는 게 중요하다. UAE와 공방전을 치를 마음도 전혀 없다”며 후배들을 독려해 2-0 완승을 이끌었다.
캡틴 박의 활약은 경기장 안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 누구보다 많이 뛰며 득점기회를 만들었고 중요한 경기에서는 직접 골까지 터트려 팀을 구했다.
팀의 주장답게 박지성은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의 샴페인이 터진 순간에도 “솔직히 한국은 아직 아시아 수준에 불과하다”며 냉정을 잃지 않았다. “한국축구는 아시아 축구 수준을 넘어 세계적인 클래스에 도달해야 한다”며 태극호의 다음 목표를 차분하게 설정했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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