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4일 LPGA 웨그먼스 골프 토너먼트에 참가한 지은희. | ||
#왕따 속에 거둔 우승
지난주는 ‘가평 선머슴’에서 세계 최고 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자로 거듭난 지은희(22)가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예전 <일요신문>이 보도한 ‘가평 지은희 골프연습장’ 기사에 소개된 수상스키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부친 지영기 씨의 골프대디 스토리 등 숱한 화젯거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우승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하나 있다. 최근 지은희가 선배들과의 갈등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보면 아주 귀여운 외모지만 지은희는 원래 털털한 스타일이다. 가평종고시절 학교에서 논다는 애들도 지은희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다부졌다. 옷 입는 스타일이나 행동거지도 좀 남성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학생 치고는 말도 별로 없는 타입이었다.
이런 지은희는 인사도 ‘남자식’으로 한다. 선배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할 때 고개만 까닥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말수도 별로 없으니 선배들 처지에서는 싹싹해 보이지는 않는다. 매일 같은 사람들끼리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미LPGA투어에서는 이런 소소한 일이 큰일로 번지기도 한다.
몇 주 전 사고가 터졌다. 그렇지 않아도 몇몇 선배들이 지은희의 인사법에 불만을 갖고 있었는데 성격이 다혈질인 선배 A가 지은희를 불러다가 호되게 혼을 냈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 지 씨는 자신도 운동을 한 까닭에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고 싶어 한국선수 중 최고참이자 선수이사인 정일미와 상담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전해들은 A 선수는 ‘선수들 문제에 아버지가 개입했다’며 더 분개했고 바로 지은희를 눈물이 나도록 몰아붙였다. 이것이 다시 지 씨에게 알려졌고 화를 이기지 못한 지 씨는 대회 연습장에서 고참 선수들에게 거칠게 항변했다. 이 과정에서 지 씨는 “니들이 무슨 프로냐?”는 식으로 말했고 이것이 다시 고참 선수들을 자극해 문제가 됐다. 중간에서 지 씨와 고참 선수들의 화해를 주선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번 US오픈 우승 전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지은희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이런 불편한 상황이 지은희를 더 독하게 만들어 큰 우승을 달성했다는 촌평이 나오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A 선수가 바로 US오픈 우승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캐디 사건
B 선수의 아버지는 미LPGA에서 아주 유명하다. 기행으로 미LPGA로부터 출입금지 조치를 받았을 정도다. 어렸을 때부터 딸의 골프를 가르쳐온 ‘골프 대디’인 이 아버지는 올 들어 딸의 성적이 부진하자 다시 직접 캐디로 나섰다.
그런데 한 달여 전 이 ‘아버지 캐디’는 경기 중 딸의 플레이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직 잔여 홀이 남아있는데 그냥 캐디백을 던져버리고는 골프장에서 나가버렸다.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프로선수가 직접 백을 맬 수도 없고, 아주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보다 못한 대회 자원봉사자가 대신 백을 들어주는 진풍경이 발생했다.
당연히 이는 문제가 됐다. 특히 한국선수들 사이에서 “나라 망신”이라며 비난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LPGA사무국은 “캐디는 선수가 고용하는 것이다. 캐디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중징계를 줄 근거가 없다”며 ‘아버지 캐디’에게 가벼운 경고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재미있는 것은 B 선수가 이 사건 이후 샷 감각이 살아나 요즘 부쩍 성적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충격요법이 통했던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잘했다고는 할 수 없는 해프닝이다.
#선수이사 바쁘다 바빠
▲ 정일미 선수이사 | ||
얼마 전에는 선수인 딸과 아버지가 찾아와 하소연을 하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는 통에 진땀이 나기도 했다. C 선수와 아버지가 연습 라운딩을 하고 있는데 플레이가 많이 늦었다. 이에 뒷 조에서 플레이하던 한국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아졌고 한 아버지가 다가와 거칠게 항의했다. 마침 항의하던 아버지의 손에 골프채가 쥐어져 있어 골프채를 흉기 삼아 협박한 것 아니냐는 설전이 크게 오갔다.
어쨌든 C 선수의 아버지는 구설에 올랐다. 이 C 선수와 아버지는 정일미에게 “사실 안 보여서 그렇지 우리 앞에 일반인들이 골프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빨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너무 억울하다”고 해명을 한 것이다.
최고참인 정일미가 한국선수 중 유일한 선수이사를 맡게 되자 긍정적인 일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선수들의 봉사활동이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대회마다 최소한 2~3명의 한국선수가 봉사활동에 참가한다. 얼마 전 한국선수들 전체가 성금을 모아 기부와 함께 봉사활동을 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LPGA투어에서 전체적으로 한국선수들의 위상이 크게 올랐다는 평가다. 심지어 외국선수들까지도 정밀미에게 찾아와 이것저것 상담하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LA=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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