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건 악몽이야 2009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박태환이 지난 27일 오전(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포로 이탈리코 메인풀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예선에서 조 3위로 들어온 후 거친 숨을 쉬고 있다. 이후 준결승에서 부진해 결국 결승 진출엔 실패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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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계 파벌싸움 탓?
잠깐 시간여행을 해보자. 박태환은 2006년 12월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 및 대회 MVP에 선정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물개’가 됐다. 97년 꼬마 박태환을 발굴해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키운 노민상 감독도 함께 한국 수영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직후 박태환은 노 감독을 떠났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이전에 후원을 받던 아레나 대신 스피도 소속으로 전담팀을 꾸렸다. 전담팀 코치(박석기)도 별도로 있었다. 당시 노민상 감독은 서운했지만 “우리 인연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조용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2007년 3월 세계 수영선수권(호주)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열광했고 세계가 놀랐다. 하지만 이때도 수영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우려를 나타냈다. 원래 주종목인 1500m는 부진한 반면 400m에서 선전을 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을 위한 강훈 덕에 400m에서는 좋은 성적이 가능했지만 장거리인 1500m 부진은 훈련부족과 맞물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수영의 사상 첫 세계제패에 이는 곧 잊혀졌다.
박태환은 2007년 말 결국 최악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전담팀 내부 문제가 불거졌고 전담코치가 해임됐다. 박태환은 호주 전지훈련을 코치 없이 가야했고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초비상이 걸렸다. 이 사이 연예인과의 염문설, 훈련 태만 등 박태환의 사생활과 관련된 많은 루머들이 나돌기도 했다.
이에 박태환은 2008년 2월 노민상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으로 돌아왔고 하루 1만 5000m라는 엄청난 훈련을 거듭했다. 이 기간 노 감독은 철저하게 박태환의 외출 및 외박을 통제했다.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을 때의 몸 상태가 도하아시안게임 때와 비교해서 아주 나빴기 때문이다. 2008년 3월 한라배대회 때 박태환의 기록은 실망스러웠지만 이후 박태환은 맹훈련과 함께 동아수영대회에서 기록을 크게 단축하고 마침내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400m 금메달, 200m 은메달의 쾌거를 달성했다.
박태환의 1차 슬럼프(2007년 겨울)가 사생활 관리 실패로 인한 훈련 부족 때문에 비롯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담팀 구성(2007년에는 스피도, 2008년에는 SK텔레콤)-개인훈련-기록저하 등 사이클도 이번과 비슷하다. 단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그나마 5개월 전에 대표팀에 합류해 교정이 가능했지만 ‘2009년 로마참사’에서는 이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즉 시간의 수레바퀴를 조금만 돌려보면 온 국민이 놀란 박태환의 이번 부진이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 찾아온 슬럼프가 아니고 또 그 원인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 박태환을 지도하는 노민상 감독.-연합뉴스 | ||
먼저 미국 훈련이 과연 충실했느냐다. 미국 수영계를 잘 알고 있는 한 재미동포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한국 언론에는 훈련이 성공적이었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당시 USC훈련에 참가한 선수나 지도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박태환이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도저히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박태환의 USC훈련 모습을 직접 지켜본 한 한인코치도 “선수가 저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간혹 나태한 훈련태도나 수영에 대해 문외한인 전담팀의 지나친 선수 감싸기를 지적할 참이면 오히려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며 면박을 당했다고 한다. 박태환이 한국이 나은 영웅이고 현역 올림픽챔피언인 까닭에 어떤 조언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미국훈련 당시 박태환을 지도했던 USC 수영팀의 데이브 세일로 감독은 명지도자이지만 미국의 훈련방식이 한국과 크게 달라 전지훈련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미국에서는 지도자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선수 자신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방식으로 훈련이 이뤄진다. 즉 철저하게 자율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통제된 스파르타 훈련에 익숙한 박태환은 이 ‘자율’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세일로 감독 자체도 자신이 길러낸 제자들의 최대 라이벌인 박태환을 악착같이 지도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박태환에게 쓴 소리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짧은 시간이지만 막판 박태환과 훈련하게 된 노민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먼저 자동차 키부터 빼앗을 것”이라고 말이다. 노민상 감독은 부모 등을 포함해 현재 박태환에게 쓴 소리를 할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잔소리는 필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태환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꾸 노 감독을 떠나 태릉선수촌 밖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또 해외로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보다 박태환의 성격과 사생활, 그리고 전담팀 제도의 문제점을 잘 아는 노 감독도 ‘누워서 침뱉기’인 까닭에 외부에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지만 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이미 박태환은 노 감독도 통제할 수준을 벗어난 것이다.
박태환의 전담코치였던 유운겸 코치는 “통제가 안 된다. 새벽 운동 때문에 전화를 해도 잘 안 나온다. 사생활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심지어 박태환의 부모도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의 개인생활과 훈련 등에 대해 개입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수영연맹 측도 “누가 박태환을 막겠는가? 전담팀을 하겠다면 그렇게 하고,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무조건 OK다. 박태환 선수가 파벌 운운한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황당해하고 있다.
박태환의 전ㆍ현직 코치, 그리도 대다수 수영인들은 ‘영웅’ 박태환을 관리할 수 없었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박태환에게 뭉칫돈을 안겨주는 스폰서, 즉 SK텔레콤이 이런 박태환의 소통불능 상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박태환 보호’라는 명목 아래 일부 상업적인 활동을 제외하면 박태환의 외부접촉을 철저하게 제한한다는 사실이다. 이 전담팀에는 훈련파트너(임남균)를 제외하면 수영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당연히 전담팀은 철저하게 박태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 ▲ 고개 숙인 남자 박태환이 7월 28일 오후(현지시각) 팀 동료들과 남자 자유형 200m 경기장을 찾아 경기시작을 기다리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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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젊은 박태환에게 모든 가치를 뒤로한 채 운동에만 전념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이미 19세에 올림픽챔피언이 됐고 이후에 더 운동을 열심히 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싫은 소리를 하는 오래된 지도자를 택할지 아니면 편하게 대해주는 외국인 지도자를 택할지는 전적으로 그가 결정할 문제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박태환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주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재벌이 엄청난 돈을 앞세워 꾸린 ‘박태환 전담팀’은 결과적으로는 득보다는 독이 된 측면이 더 많다. 선수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전용사무실, 전용차량, 경호원 등을 내세워 선수관리까지 자신들이 다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옳지 않다.
박태환을 잘 아는 한 중견 수영인은 “전담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그리고 노민상 감독도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박태환과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향후 수영연맹, 노민상 감독, 박태환 및 가족 등이 진솔한 대화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전제는 박태환 본인의 결심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